주님의 죽으심에 대한 말씀에서 fashion에 대한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19장처럼 주님께서 입으셨던 옷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별로 없기에 한번 생각해 본다. 먼저 마 5:40의 ‘겉옷’이라는 단어와 같은 ‘옷’이라는 말은 ‘히마티온’ 이라는 단어로서 바느질 하지 않은 그냥 긴 천을 말한다. 이러한 천으로 몸 전체를 두르는 것이 당시 사람들이 입던 옷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천은 가난할 자들에게는 밤에 이불 역할도 했다 (출 22:27). 그렇기 때문에 군인들을 네 조각으로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뒤 ‘속 옷’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영어로는 tunic이라고 번역했고, 킹제임스는 구어를 써서 coat라고 번역했다. 바로 당시 로마 혹은 그리스인들이 입었던 요즘 말하면 티셔츠를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게 만든 옷이다. 그런데 보통 옷을 만들 때는 천 두장을 겹쳐서 바느질 하지만 주님이 입으셨던 속옷 tunic, 원어로는 ‘ㅋ히톤’ 이라는 말로 히브리어 ‘케토네트’에서 온 단어를 썼는데, 천을 붙여서 바느질 한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실을 계속 연결해서 통으로 짠 것이다. 이러한 케토네트는 구약에서 대제사장들이 입던 옷이었다. 군인들은 옷이라는 물질을 취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어서 왜 주님이 이러한 케토네트를 입으셨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겉을 둘렀던 천 안에는 주님의 참된 모습을 나타내는 케토네트가 있음을 본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에 맞는 옷을 입는다. 그리고 옷은 그 사람에 대해 말한다. 사무직에 종사하는 이들은 양복을 입거나 정장을 할 것이고, 의사는 가운을, 군인이나 경찰은 유니폼을, 노동자는 노동복을, 학생들은 학생들에 맞게, 그리고 그 외 여러 옷 입는 양식은 그 입은 사람에 대해 말해준다. 통으로 짠 케노네트를 입으신 주님은 영원하고 참된 대제사장이시다. 히 4:14-15은 말씀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또 7:26에서도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라고 하며 8:1에서도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라고 말씀하신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고 하고, 김어준은 보스를 입고 (https://www.facebook.com/hotae.min.9/posts/10153246160937249?pnref=story), 대제사장은 튜닉을 입지만,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롬 13:14)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우리의 정체성이 확인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 그리고 ‘다 이루었다’ 선포하신 그 말씀의 능력은 비록 비천한 죄인이지만 그리스도를 옷 입는 우리에게 주님을 섬길 위치와 명분을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