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의 여러가지 면을 묵상했지만 말고에 대해서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묵상해 보았다. 말고의 귀 베이는 사건은 모든 복음서에 등장하지만 이름은 요한복음에만 나오고, 후에는 아예 언급이 되지 않으며 그가 어떤 인물이 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사복음서의 짧은 언급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베드로가 말고의 오른쪽 귀를 베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 중에 맨 앞에 서 있던 사람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베드로가 급박히 돌아가는 상황 중에 무리 중간에 섞여 있는 사람이나 아니면 제일 뒤에 따라온 사람까지 일부러 가서 칼로 치기는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냥 명령을 따른 사람은 아니고 아마도 제일 앞장서서 일을 수행했던 사람일 수 있다. 말고는 ‘대제사장의 종’이라고 밝히는데 이 ‘종’은 ‘둘로’라는 단어로 노예 혹은 종이라는 뜻이다. 즉 대제사장의 종으로서 그는 제약이 많고 율법에 완전히 묶여 살았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아마도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며 대제사장들과 주변 인물들이 하는 편협된 말만 듣고 제일 앞장서서 예수를 잡으려고 왔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요한은 굳이 그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항상 각 장마다 이름이나 지명 등을 통해 특별한 의미를 전달한 요한이 그의 이름을 밝힌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말고라는 이름의 뜻은 ‘왕국 (헬라어로는 바실레이아)’ 혹은 ‘왕’이며 어원은 ‘멜렉’ 이다. 역대상에 이름이 나오고 창세기에 ‘아비멜렉’ (아버지는 왕, 혹은 왕의 아버지) 등의 이름이 나온다. 즉 ‘임금’이라는 뜻인데, 종의 이름을 ‘임금’이라고 지은 아주 부자연스러운 경우이다. 종의 이름은 보통 주인이 지어준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아마도 종들 중에 뛰어나고 힘과 지혜가 출중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지 주인이 종에게 ‘임금이여!’ 라고 부르기는 힘들었을 것 같지만, 아무튼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그 무리를 인솔해온 것일 수 있겠다.
그런데 그는 주님을 다이나믹하게 만난다. 대제사장의 '우두머리 종'이 주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칼이 들어오자 아마도 피하느라 피했지만 오른쪽 귀를 맞은 것 같다. 베드로는 그의 오른쪽 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머리를 부수려고 했던 것 같지만, 공격에 비해 피하는 것이 늦어 말고의 귀는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주님은 즉시 그의 귀를 만져 낫게 하셨다 (눅 22:51). 여기서 아마도 말고는 태어나서 처음 그 생각에 큰 충격이 있지 않았을까? 죄인인줄 알고 잡으러 간 사람의 종이 자기를 공격해서 귀가 베였는데, 그 잡으러 간 당사자 예수님이 바로 그의 귀를 고쳐주신다. 그리고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마 26:52)' 고 말씀한다. 그는 황당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황했을 것이고 혼란이 왔을 것이다. 그의 좁은 세계에서 그는 ‘왕’이었지만 왕의 귀가 잘리는 수치와 수모를 당한다. 하지만 그가 대적하고 결박하러 갔던 ‘적의 수장’이 그의 귀를 낫게 한다…
각자는 알게 모르게 ‘말고’로 살아간다. 단체 사진을 찍은 후 제일 먼저 보는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고, 모든 것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자신이 왕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왕좌를 내려놓을 때가 온다. 바로 주님을 다이나믹하게 만날 때이다.
그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은 나중에 바울처럼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혹시 초대 교부 중에 이름이나 별명이 귀에 관련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혹시 말고는 아닐까? 물론 완전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님 말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