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심
  2.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앞으로 있게 될 일을 우리에게 알리심
  3.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심

주님은 성령을 보혜사라고 하십니다.  ‘보혜사’라는 한자는 ‘보호할 보, 은혜 혜, 스승 사’를 써서 보호하는 은혜의 스승을 말하는데, 원어는 ‘파라클레이토스’ 라는 단어를 써서 옆에서 (혹은 ~로부터) 말씀하시는 (클레이토스) 즉 지도하시고 인도하시고 변호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단어는 두 단어의 복합이지만 한 단어로 봅니다.  즉 오직 성령에만 쓰이는 단어입니다.)  이 보혜사 성령은 사실 주님과 하나입니다.  아들 하나님과 구분은 되지만 분리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하시는 일은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항상 예수를 드러내십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예수 밖에는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세 가지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했는데, 이 ‘책망하다’라는 말의 원어 ‘ἐλέγχω 엘레그코’는 ‘꾸짖다, 책망하다’의 뜻도 있지만 ‘폭로하다’의 뜻도 있습니다.  이 구절을 좀 더 알 수 있는 말씀이 고전 14장에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몇몇 경우 성령의 부으심이 있던 곳에 방언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방언과 성령은 뗄 수 없는 관계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들 수 있지만, 방언을 (외국어와 천사의 말 모두를 포함해서) 누구보다 더 많이한 바울은 오히려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이들을 위하는 표적이라고 말합니다.

22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위의 구절 중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에서 ‘책망’이 바로 ‘엘레그코’이며 그것은 바로 뒤 25절의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즉 폭로하는 사역임을 설명합니다.

첫째로 죄가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내고 밝히시는데, 주님을 믿지 않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침례자 요한이 주님에 대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요 1:29)’ 이라고 선포했듯이 주님의 십자가 구속사건으로 말미암은 사죄의 역사는 믿는 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과 온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역이심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소위 ‘지옥가는’ 사람들은 이제는 자신들의 지은 죄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구속과 죄사함을 주신 주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정죄받습니다.  그렇기에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의에 대해서는 주님이 아버지께로 가심을 말씀하시는데,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에는 아버지께로 부터 오신 후의 일 즉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 모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이것은 주님을 믿는 신자들이 의롭게 되는 것은 물론 주님 자신 역시 의로우심을 증명하십니다.  주님의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주님의 의가 나타났고 동시에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을 통해 그를 믿는 우리의 의도 증명하셨습니다.

셋째로 심판에 대해서는 세상의 임금 (아르콘, 통치자, 우두머리, 리더 등)이 이미 정죄받았음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원래 사람에게 통치권이 주어졌었지만 아담의 죄로 사탄이 아르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모든 공로는 주님과 믿는 이들의 의를 드러낸 것 뿐만 아니라, 사탄의 부족함과 죄도 완전히 폭로되었고 정죄되었고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 심판에 대한 집행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미 심판받은 사탄은 이제 법적으로는 무기력한 존재일 뿐입니다.

주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이 우리에게 더 유익한 이유는 보혜사가 오시는 것인데, 육신으로 오신 주님을 만나려면 우리가 주님께로 가야하지만, 영으로 오신 보혜사는 그 단어 자체에 ‘보조’라는 뜻도 있습니다.  즉 우리가 성령에게 가야하거나, 성령님을 기다리거나, 혹은 성령을 소위 ‘초청’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혜사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 곁에 (para) 항상 계셔서 도우시고 보조하십니다.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우리는 보조하신다니!  그런데 성경은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롬 8:9,11).

죄 짓기에 빠른 나지만 오늘도 지금도 내 옆에서 또 내 안에서 영적으로 아직도 성숙되지 못하는 나를 보조하시는 보혜사 성령이 계심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