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목을 붙여놓고 보니 좀 무시무시하다.  마치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돌 맞으실 것 같은 상황처럼 나도 돌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ㅎㅎ)

오늘 큐티 해석에서 35절에 대해 시편 82: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의 말씀을 인용했다고 하는데, 바로 다음 절에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라고 했기 때문에 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 보다는 출 4:16 말씀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즉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할 때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하나님같이 된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고대에 왕의 칙서를 전달하는 사람은 마치 왕 자신같이 대했다.  마찬가지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모세는 그 말을 받는 이들에게 하나님 같았다.

아마도 시 82:6을 인용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35절의 원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에서 ‘신’은 사실 복수인 ‘신들’인데, 시 82편에서 그것이 잘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82:1절은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고 되어 있는데, ‘하나님’과 ‘신들’ 모두 히브리어로는 ‘엘로힘’이다.  이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참 재미있는 단어인데, 그 자체 형태는 복수지만 그에 따른 동사와 부사에 의해 유일신이신 창조주 하나님도 되고 그냥 ‘신들’로 이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창세기 1:1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태초에 엘로힘께서 천지를 바라(단수격 동사)하셨다’ 이다. 그래서 시편 82:1은 ‘엘로힘은 강한 자의 모임 가운데 서시며 (단수격 동사) 엘로힘 가운데 재판하시느니라’ 가 된다.  6절은 개역에서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라고 번역했는데, 히브리 원어는 ‘나는 너희들이 엘로힘이고 너희 모두가 절대자의 아들들이다 라고 했다’ 이다.    

이제 35절을 헬라어 원어로 보자.  아예 그냥 헬라어로 모두 써 보겠다. 

εἰ ἐκείνους εἶπεν θεοὺς πρὸς οὓς ὁ λόγος τοῦ Θεοῦ ἐγένετο καὶ οὐ δύναται λυθῆναι ἡ γραφή    (으악~ 영어도 머리 아픈데 헬라어까지! ^^ )

해석하면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 그가 신들이라고 했다면, 그리고 기록은 풀릴 (폐할, 무효화할) 수 없다’ 이다.  ‘만일’에 대한 ‘then’의 설명은 36절이다.

그런데 위 문장에서 중요한 것은 첫번째 ‘신, 떼우스’는 복수로 ‘신들’이고, 두번째 신 ‘로고스 투 떼우’ 즉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단수이다.  구약에서 본다면 모두 ‘엘로힘’이 된다.  그런데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단어는 바로 ‘에게네토’라는 단어이다.  우리 말 성경에서는 말씀을 ‘받은’ 이라고 번역했지만 거의 모든 영어 성경에서는 came으로 번역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사실 ‘되었다’라는 단어다.  1장 14절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에서 ‘되어’도 바로 이 ‘에게네토’ 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되다, 등장하다, 나타나다, wrought(만들어지다)’ 등의 뜻이 있지만 한국어 번역의 ‘받다’ 혹은 영어 번역의 ‘오다’ 등의 뜻은 없다.  그래서 다시 번역하면 이렇게 된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진 사람들에 대해 그가 신들이라고 했다면, 그리고 기록은 풀릴 (폐할, 무효화할) 수 없다’

이 ‘되어진’이라는 단어 에게네토’는 단수격 동사로서 그 ‘사람들’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수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받다’ 혹은 ‘오다’로 번역했을지 모르지만, 원어를 보면 1장 14절 말씀을 떠오르게 한다.  물론 주님 당신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로고스이시고 그 분 외에는 말씀이 육신이 된 이가 없다.  하지만 이 35절에서 굳이 ‘에게네토’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로마서와 히브리서에서 찾을 수 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 1:6)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유일하신 독생자 (모노게누스: 이 단어도 역시 모노+기노마이 즉 에게네토) 시지만 이제는 더 이상 유일한 아들이 아니고 그 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많은 아들들이 나오게 되어 이제 ‘맏아들’ 되신다.  그리고 그 많은 아들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존재 전체가 ‘말씀화’됨으로 거룩해지고 아들의 위치와 생명과 성분을 얻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고대 왕의 칙서를 보낼 때 그 임명을 수행하는 사람은 아무에게나 시키지 않는다.  왕의 뜻을 온전히 알고 왕의 생각과 마음과 뜻으로 뭉쳐진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  그래서 그의 칙서를 펴고 읽을 때 듣는 이들은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오늘 나는 말씀으로 뭉쳐지고 있는가?  말씀으로 충만되어 아들의 위치와 성분이 되어가는가?

주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이유가 우리로 말씀이 되게 하기 위함임을 봅니다.  주님의 말씀은 그냥 정보나 교훈이 아니라 생명이며 하나님 자신이심을 고백합니다.  그 말씀으로 채워져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 원합니다.  주님의 구원은 놀라운 것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