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하신 말씀에 유대인 중에 분쟁 즉 분열이 생긴다.  그 중에 ‘많은’ 이들은 주님이 다이몬에 들렸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다이몬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냐고 쟁론한다.  겨울철 크리스마스 기간쯤 하누카라는 구약 율법에는 없는 절기가 새로 생겼는데 그 때 주님께서 성전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실 때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묻는다.  우리 번역에는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라고 했는데, 영어에는 keep us in suspense (NIV, NASB)  make us to doubt (KJV) 등으로 번역했고, 원어에는 ‘프쉬켄 헤몬 아이레이스’ 라고 했다.  ‘프쉬켄’은 ‘혼’이고 ‘헤몬’은 ‘우리의’ 즉 ‘우리의 혼’이다.  ‘아이레이스’라는 단어가 재미있는 단어인데 원형 αἴρω 의 뜻은 ‘들어 올리다, 옮기다, 올린 것을 들고 있다, 고기를 낚다’ 그리고 그 외 여러 뜻이 있다.  눅 9:23의 각자 제 십자가를 ‘지고’ 에도  쓰였고, 마 17:27 반 세겔 내는 문제에 대해 주님께서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라는 말에 ‘오르는’ 즉 ‘낚는’ 이라는 단어에도 쓰이고 그 외에도 많다.

아마도 ‘의혹’이라는 뜻으로 번역한 것은 ‘고기를 낚다’의 뜻에서 온 것 같다.  요즘도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다 제목에 혹해서 기사를 읽어보면 별 내용이 아닌 것을 보고 ‘낚였다’라고 하는 것 처럼, 아마도 주님 시대에도 사람들이 ‘미혹케’ 하는 것을 가리켜 ‘낚이는 것’으로도 이해했나보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 때문에 공중에 뜬 상태가 되었고 들쑤셔 놓은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말씀이 그들 자신이 ‘낚이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을까?  24절에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라고 하는데 주님께서는 이제까지 계속 밝히 말씀하셨다.  그들은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바로 앞절 17 18절 내용 때문일 것 같다.  유대인들이 다이몬 들렸다고 한 것도 ‘너희들은 왜 나를 죽이려 하느냐?’라는 주님 말씀 때문이었고, 앞의 말씀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 또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그리고 이러한 명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았다는 말씀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이 바라던 그리스도 메시야의 모습은 죽어야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교회 안에 가끔 들쑤셔 놓는 일이 발생하고 거기에 따라 분열이 생기는데, 많은 경우 각자의 바람과 예상이 달라서이다.  반드시 어떤 방법으로 특정한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데, 양방이 ‘순교’의 각오로 싸우게 된다.  (이런!)  한 쪽은 ‘다이몬 들렸다’고 하고 다른 한 쪽은 ‘어떻게 다이몬이 눈을 뜨게 하냐’라고 합리성을 들어 쟁론하지만 결국 둘 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주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의 양들에게 주님은 영생을 주고 계신다.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다.  주님의 양으로서 우리는 주님의 영원하신 생명을 공급받고 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에고 카이 호 파트레 헨 에스멘 I and the Father One are’ 즉 여기 동사 '에스멘'은 복수형 are 이지만 ‘하나 en’은 단수격이다.  ‘나’와 ‘아버지’는 구별될 수 있는 인격체시지만 동시에 분리될 수 없는 완전한 하나이시다.  분리할 수 없는 하나는 그 안에 완벽한 화평이 있다.  그 화평은 오늘 그리스도 안으로 믿어 하나님과 화목하게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과 아버지와 더불어 누리는 화평이다.  그래서 세상이 주는 전쟁없는 상태의 평화가 아닌 궁극적인 '하나님과의 평화'다.  바로 '하나님과 하나'됨이다.

주님, 마귀는 하나님을 떠나 분열됐고, 교회도 마귀의 의혹으로 갈기갈기 찢어졌음을 봅니다… 다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으로 돌아가기 원합니다.  분열은 우리가 양이 아닌 것을 나타내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온전히 하나이신 것 처럼 주님의 몸된 교회가 온전히 주님과 하나임을 고백하고 선포합니다.  주님의 음성 아래 다시 하나가 되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화평을 누리게 하소서.  오늘을 회복의 날, 하나됨의 날로 지정하소서.  단 하나의 성전이 다시 봉헌됐던 것 처럼 다시 하나됨을 회복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