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공부할 헬라어 단어 – 칼로스, 미아, 헤이스, 헨, 파라 (이 나눔을 읽는 분들, 머리 아프십니까? ㅎㅎ)
주님은 선한 목자시다. 선하다는 것은 좋다는 뜻인데 그 원어는 ‘칼로스 καλός’ 이다. 이 단어는 ‘아름답다, 뛰어나다, 잘생겼다, 탁월하다, 이상적이다, 좋다, 귀하다’ 등 그외 여러가지 좋은 뜻만 함축해 놓은 특별한 단어다. 구약에서 ‘나는 이다’로 자신을 밝히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 외에도 이름이 너무 많은데 그 많은 이름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 ‘나는 이다’ 였고, 그리스도 예수님도 역시 모든 좋은 것을 압축한 단어 ‘칼로스’ 시다.
그런데 이 좋은 목자, 이상적인 목자가 하는 일이 결국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제일 큰 사랑이듯 (요 15:13)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을 하신다. 삯꾼은 양들에 대해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삯에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 삯만큼만 일을 한다. 하지만 주님은 처음부터 목숨을 내려 놓기 위해 양들에게 오셨다.
가끔 목회자들 중에 삯꾼 같은 이들을 보게 되는데 그들이 삯꾼이지만 동시에 그들이 ‘관리하는’ 양들도 사실은 양이 아니라 염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흠.. 그러면 염소들도 삯꾼 목자들에게 불평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드는데, 우리는 주님께 불평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가 정말 양들인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양들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하고 그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오늘 도전이 되는 말씀은 16절인데, 원어로 보면 ‘그리고 이 우리 외 다른 양들이 나에게 있어서 그들도 내가 인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리고 한 무리 한 목자가 될 것이다’ 라고 번역할 수 있다. 개역개정의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는 ‘한 무리 한 목자가 될 것이다’를 풀이 설명한 것으로 맞는 뜻이지만 ‘하나’라는 단어를 잘 부각시키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헬라어에 ‘하나’라는 단어가 셋이나 있다. ‘미아, 헤이스, 헨 mia eis en’ 이라는 단어들인데, 미아는 여성격, 헤이스는 남성격, 헨은 중성격에 쓰인다. 그래서 ‘한 무리’ 에서는 ‘양 무리’가 여성격이기에 ‘미아’를 썼고, ‘한 목자’에서는 ‘목자’가 남성격이기에 ‘헤이스’를 썼다. 고전 10: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에서 ‘떡’이 남성격이기에 ‘헤이스’를 썼고 ‘한 몸’에서는 ‘몸’이 중성격이기에 ‘헨’을 썼다.
아무튼 16절은 유대인 무리 외에 또 다른 이방의 무리가 있는데, 주님을 통해 그 둘이 하나가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엡 2:14-15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라고 말씀한다. 주님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하나가 되어 새롭게 창조된 한 새 사람이 된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고 목자가 하나시며 양 무리가 하나된다. 하나다.
이 하나됨을 계속해서 나타내고 있는 것이 ‘파라 para’ 라는 단어다. 요한 복음을 통해 계속해서 주님은 ‘아버지로부터 (혹은 아버지에게서)’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파라’라는 단어는 영어 ‘parallel 평행선’ 이라는 말의 앞부분으로 ‘평행, 수평, 함께, 같이’ 등의 뜻이 있다. 주님께서 ‘나는 아버지로부터 왔다’라고 말씀하실 때 어딘가 멀리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뚝 떨어져 오셨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아버지 ‘옆에 함께, 그 분으로부터’ 오심을 말씀하신다.
주님, 하나로 만드시는 것은 주님의 일이요, 분열시키는 것은 원수의 일임을 봅니다. 주님의 음성과 인도하심에 순복함으로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이들이 양으로 거듭나 하나되게 하시고, 또 결코 하나될 수 없는 인성과 신성이 새롭게 창조된 한 새사람으로 하나되게 하심을 바라봅니다. 오늘도 믿는 이들을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하나됨으로 인도하소서. 한 분 하나님을 믿고 한 아버지를 모시는 한 새 사람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