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날 때 부터 맹인 된' 사람이 등장하며 인간의 근본적인 장애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주님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면 영적으로 맹인이기 때문이다.  날 때 부터 맹인인 사람은 평생 보지 못하다가 죽을 수 밖에 없다.  주님을 알지 못하면 역시 그렇게 된다.

제자들이 맹인으로 난 것의 원인이 무엇이냐고 주님께 물었을 때 주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시며 친히 침으로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고 실로암으로 가서 못에 씻으라고 명함으로 고쳐주신다.

여기에는 세 가지 과정이 있다.  하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냄’ 이라는 결과적 과정이 있고, 둘째는 주님께서 친히 고치시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에는 맹인이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는 과정이 있다.

오늘 말씀을 읽다보니 갑자기 동성욕에 대해 생각난다. (나는 동성애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성욕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고 또 과학적으로 선천적인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그것이 증명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데이터가 없다.  마치 약을 팔려는 기업은 그 약에 대한 안전성을 주장하지만, 약의 부작용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약에 대해 부정적인 것을 주장하는 것 처럼 동성욕에 대해서는 절대로 ‘과학적인’ 해석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과학적인 해석을 넘어 도덕적이고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레이디가가라는 가수가 양성을 동시에 갖고 태어나서 그 문제로 동성욕을 옹호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실수니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하느니 하지만 오늘 말씀의 맹인처럼 그렇게 '육신적으로' 날 때 부터 기형인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그리고 정상인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판단할 수 없을진대 그들을 기준으로 하나님을 판단할 수는 결코 없고 오히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임을 봐야한다.

사실 양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다.  홀몬 불균형이든가 임신 때 임산부의 부주의라든가 아니면 정말 아무 이유없이 양성을 가지고 태어났을 수도 있지만, 결론적으로 그 예는 극소수이고 또한 현대 의학으로 수술을 통해 정상적이 될 수 있다.  임산부의 잘못으로 인한 문제나 또 과학적으로 해결이 이미 가능한 일에 대해 하나님의 실수라고 하는 것은 그 마음이 본래 하나님을 떠난 죄인임을 말해준다.

두번째 과정은 주님께서 친히 고치시는 과정인데, 과학 혹은 의학의 힘을 빌어 기형적 육체를 고치는 것에 주님의 임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오직 주님께서 모든 병을 ‘친히’ 고치시지만, 그래도 우리는 병원에 간다.  암에 걸리면 기도도 하지만 수술도 한다.  의사의 손을 통해 주님께서 역사하심을 믿으며 치유의 원천은 주님이심을 인정한다.  물론 믿음이 정말 좋으면 온전히 주님께 맡길 수 있다. 각자의 믿음에 따라서다.

재미있는 것은 6절 ‘그의 눈에 바르시고’ 에서 ‘바르시고’ 라는 단어는 요즘 영어로 하면 apply라고 하겠지만 원어는 ἐπιχρίω 라는 단어로 ‘에피’와 ‘크리오’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인데, ‘크리오’ 라는 단어는 ‘기름붓다’의 뜻이다.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의 그 ‘기름붓다 (anoint)’ 이다.  주님은 맹인의 눈에 그냥 ‘바른 것’이 아니라 ‘기름부으셨’다.  맹인을 고치신 것만 아니라 그를 ‘기름 부으시고’ 또 ‘보내’셨다.  이것은 후에 보겠지만 그 맹인이 주님을 증거하는 사람을 쓰임받는다.  양성자가 고침받고 주님의 은혜와 회복을 증거한다면 얼마나 큰 영광일까.  하지만 레이디가가는 그 마음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ㅠㅠ

마지막 세번째로 환자가 스스로 주님의 말씀을 믿고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는 과정이다.  다른 때에는 주님께서 그냥 그자리에서 고쳐주셨지만 이번 만큼은 맹인을 보내시고, 맹인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많은 동성욕자들이 자신의 성적 욕심에 따라 죄를 짓고 살지만 사실 그들 중에 적지 않은 수가 자신이 하는 것이 죄인 것을 알며 괴로와 한다.  기독교가 율법주의로 타락할 때 동성욕자들에 대해서는 ‘정죄’의 자세로 간다.  하지만 주님께서 정죄하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도 정죄해서는 안된다.  구약 레위기 20장에는 동성욕자나 짐승과 교합하는 이들을 반드시 죽일 것을 명했지만 그 동일한 장에서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 역시 반드시 죽일 것을 명하신다.  이 말씀은 우리가 짓는 다른 여러가지 죄들도 동성욕과 마찬가지로 모두 사형선고, 즉 사망으로 인도하는 동일한 것임을 말씀한다.  동성욕이 특별히 나쁜 죄가 아니다.  모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정죄보다는 ‘가서 다시는 죄짓지 말라’는 가르침과 돌봄이 필요한데, 동성욕자들을 위한 목회가 필요하다.  그들을 품고 그들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인도하는 목자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이 실로암으로 가서 씻을 수 있게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들이 그들 자신도 ‘보냄 받은’ 사람들임을 깨닫게 될 때 회복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주님,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해서 이해하기 힘든 주님의 어떠하심과 상황과 형편이 분명히 존재함을 압니다.  이러한 상황들로 인해 실족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실 수 있는 귀하고 특별한 기회로 여겨 주님의 일하심을 목도하게 하소서.  주는 오로지 찬양받으실 분이심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