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사람은 자신의 집으로 갔지만 주님은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철야기도를 하시고 이른 아침에 내려오셨는데 처음 맞닥뜨린 사건이 간음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에 대한 사람들의 고소다.

전에는 이 사건을 죄지은 한 여인에 대한 주님의 긍휼로 이해했는데, 오늘은 ‘모세’와 ‘율법’을 운운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보니 마치 모세가 주님의 십계명을 받아 내려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에게 절함으로 영적 간음을 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서 본 것 처럼 주님도 산에서 내려와 접한 사건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고소하는 무리 가운데 주님께서 땅에 무언가 쓰신 것이다.  주님께서 무언가 직접 쓰신 것은 이 사건이 유일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엇을 쓰셨는지 궁금해 하는데, 모세의 경우에 비춰보면 깨달을 수 있다.  주님은 그 시끄러운 사건 속에서 권위를 가지시고 땅에 직접 쓰셨다.  여호와 하나님도 모세 앞에서 친히 쓰셨다.  그리고 주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다.  그리고 나서 다시 쓰셨다.  모세가 처음 받은 돌판을 진노함으로 깨버리자 여호와 하나님은 다시 써서 주셨다.  주님도 역시 두번째로 쓰신다.

그래서 주님의 두 번 쓰심은 십계명이다.  그리고 여기서 ‘죄’는 십계명을 어기는 죄다.  유대인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모두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지만 계명의 기본이 되는 십계명 조차 자신들 양심에 비춰어 지키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해주신 사건이다.

이제 주님이 내 마음에 쓰시기 원한다.  희망없는 내 속에 주님을 결코 부인할 수 없도록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당부하시며 능력의 계명을 새기시기 원한다.  기회만 생기면 주님을 떠나 간음하는 나지만 또 그 여인이고 또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이 내 마음 속에 각인되기 원한다.

주님,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는 계명이지만 딱딱하게 윽박지르는 말씀이 아니라 주님의 당부와 사랑이셨네요.  주님만을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일인지요.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