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38절의 말씀은 믿는 이들에게 하신 약속인데 39절에는 ‘생수의 강’이 ‘성령’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런데 좀 문제가 있다.  원어는 좀 다르기 때문이다.

원어대로 번역하면,

38절 내 안으로 믿는 자 (단수)는 기록에서 말씀한대로 그의 배로부터 강들이 (복수) 생수(단수)를 흐르게 할 것이다.

39절 그런데 이것은 그 안으로 믿는 이들이 (복수) 곧 받을 그 영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아직까지는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께서 아직은 계시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 두 구절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요한복음이 누가 쉽다고 했나? 마태복음도 어렵고 복음서 모두 쉽지 않은 책들이다.

우선 살펴볼 단어들이 38절의 ‘그의 배’ ‘강들’ 그리고 39절의 ‘그 영’ ‘아직까지’ ‘아직’ ‘성령’이라는 단어다.

우선 ‘그 배’ 라고 번역한 단어는 ‘배 전체 혹은 아랫배, 창자, 자궁’ 등의 뜻으로 쓰이는데 성경적 헬라어에서는 ‘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 속 사람, 혼, 마음’ 등으로도 해석한다.  계시록 10장에서 두루마리를 먹고 배가 쓰게 된 것도 역시 같은 단어이다.  문자적으로는 인간의 신체적인 배라는 뜻이지만 사실은 삶의 내면을 뜻하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 씹어 먹을 때 말씀이 들어가고 소화하는 기관이다.

‘생수의 강’이라고 번역한 ‘강’은 복수로서 ‘강들’이다.  하나의 배로부터 복수의 강들이 흐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주님의 말씀이 에스겔 47장 말씀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에스겔은 하나의 강을 말씀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슥 14: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를 말씀하신 것 같은데 사실 잘은 모르겠다.  에스겔 47장 말씀을 성령으로 이해한다면 맞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 영’도 한국어에는 ‘성령’이라고 번역했는데 정확히 ‘성령’이라고 쓴 단어는 뒤 부분에 있다. 처음은 the spirit이다.  헬라어 성경에는 대문자 소문자 구분이 없어서 보통 전부 대문자로 쓰였다. 그래서 the spirit이 영어에서 성령을 가리키는 the Spirit인지 아니면 그냥 ‘영’인지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냥 ‘영’이면 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즉 사람의 깊은 내면, 속 사람 등을 뜻하는 인간의 영이다.

‘아직까지’라는 단어와 ‘아직’이라는 단어는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단어들인데 영어로는 not as yet 과 not yet as yet이라고 번역했다.  즉 주님께서 영광받으신 것과 성령이 계심은 (오심이 아님) 무언가 연관이 있다.  아직까지 주님께서 영광받지 못하셨기 때문에 성령이 계시지 않으셨다.  우선 주님께서 영광받으셨다는 것은 아마도 죽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사건으로 해석한다.  주님께서는 요 16:7에서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라고 말씀하시며 주님께서 가셔야 성령께서 오신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주님이 가셔서 성령으로 변해서 오신다는 양태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이 ‘오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계시지’ 않았다.  아… 무슨 이런 이단스러운 해석인가… 성령은 삼위일체의 한 분으로 영원히 계시는 분 아니신가… 그런데 성경은 ‘오시지’ 않았다고 하지 않고 아직 ‘계시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다시 한번 문자적으로 해석해보자.

내 안으로 믿는 자는 기록에서 말씀한대로 그의 배로부터 강들이 생수를 흐르게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 안으로 믿는 이들이 곧 받을 그 영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아직까지는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께서 아직은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영’은 ‘생수의 강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배’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영’이 ‘내면’ 혹은 ‘마음, 혼’ 등의 뜻이면 믿지 않는 이들도 모두 있는 것이기에 ‘믿는 이들이 곧 받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속 사람’ 혹은 인간의 ‘구속된 영’ 즉 re-generated spirit을 의미하는 것 같다.  사람이 주님 안으로 믿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데 그것이 ‘그 배’가 된다.  그런데 그 배에는 전에 없던 것이 존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이시다.  예수를 주라 고백함으로 구원받게 되는데, 누구든 성령을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 고백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구속된 영에는 이제 성령께서 계신다. 

‘성령이 계신다’라는 말씀은 그래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믿는 이들 안에 계심이다.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다른 하나가 조금 더 생각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아직) 계시지 않았다는 말씀 때문이다.  성령은 영원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으로서 영원히 계신 분이시다.  주님 역시 2천년 전에 성육신 하셨지만 그 본질은 영원전에 계시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창조되었으며 또한 ‘일찍 죽임을 당’하신 분이시다. 

하지만 2천년 전 주님의 성육신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첫째 가장 큰 것으로 성령께서 인간 안에 내주하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구약과는 다른 것으로 구약에서는 여호와의 영 혹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인간에게 잠간 동안 임함으로 예언도 하고 능력도 얻게 했었지만 신약은 완전히 달라져서 인간의 영이 성령으로 중생 (re-generate)되고 성령께서 내주하실 수 있게 된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주님 안으로 믿는 이들은 더 이상 ‘육신이 되(창 6:3)’지 않고 ‘신령한 자 (고전 2:15)’가 되고 ‘성도’가 된다.

그래서 이 짧은 두 구절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 이렇게 된다.

//주님 안으로 믿는 자는 기록에서 말씀한대로 그의 중생한 영으로부터 많은 강들의 모양으로 성령이신 생수가 뿜어져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 안으로 믿는 이들이 곧 받을 그 영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아직까지는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께서 아직은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정말 놀랍고 두렵기까지 하다.  그냥 살다가 천당가는 구원이 아니라 우리 존재 안으로 부터 성령이 충만해서 터져 나오는 삶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열쇠는 바로 ‘주님 안으로 믿는 것’이다.

주님, 제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 안으로 믿음’ 안에 있고 ‘주 안에’ 있기 원합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없고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나의 모든 죄들과 스트레스와 문제와 과거의 어두운 것들과 과오를 던집니다.  주의 언약의 말씀이 이것이오니 내 삶에 이뤄지게 하소서.  중생한 나의 영으로부터 생수의 강들이 뿜어져 나오게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