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예전 복음 송 제목이다.

  1. 그리 쉽진 않아요 천국 가는 길이 그 길엔 어려움 많아요

구주 예수님께서 우리 함께 계시니 매일 기쁘게 살아가네

하지만 그리 쉽진 않아요

예수님 내 곁에서 날 도와주시니 무거운 짐도 가벼우네

 

  1. 그리 쉽진 않아요 환난 풍파가 와도위험이 해칠 수 없네요

구주 예수님께서 우리 보호 하시니 평탄한 길을 걸어가네

하지만 그리 쉽진 않아요

예수님 내 곁에서 날 도와주시니 무거운 짐도 가벼우네

 

구원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주께로 오는 길이 박사 학위를 받을 만한 지식이 있거나 어떤 특출한 능력이 있거나 돈이나 건강이 있어야 하지는 않다.  단지 주님께로 오면 되는 쉽고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 부딪히면 간단하지만은 않은 문제임을 경험하게 되는데, 첫째로 나의 죄성이 내 예상보다 끈질기고 나의 의지나 힘보다 훨씬 세며, 둘째로 믿지 않는 사람들도 경험하는 현실 상황과 거기에 따른 기본적인 책임을 지는 것 조차도 녹록지 않고, 마지막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앞의 모두 짐을 지는 동시에 주님을 따른다는 짐도 짊어지기 때문이다.  더우기 오늘 말씀처럼 나의 기대와 다른 주님의 모습을 보거나,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서 주님 따르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유대인들 뿐만이 아니라 열두 제자 외의 다른 제자들 다수가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에 대해 큰 혼동이 있었다.  ‘어렵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라고 탄식한다.  마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막 10:26, 눅 18:26)’ 하고 제자들이 궁금반 우려반의 질문을 하던 때와 비슷하다. 

신앙생활을 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겪게 되는 혼돈이 있다.  전에 잘 믿어지던 하나님도 ‘정말 계신가?’ 라는 질문이 생기게 되고, 교회가 되어가는 꼬라지(?)를 보면 정떨어질 때도 있고, 더우기 그 모든 것 보다 믿는 다고 하는 내가 아직도 요모양 요꼴을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면 포기하고 정신줄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더우기 같은 성경을 가지고 여러 모양으로, 특히 자신들의 교리와 교권에 입각한 해석을 내놓아 다른 이들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을 보면 정말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요즘은 선교지에 가보면 ‘이거 혹시 믿음 생활이라는게 나 혼자만의 파티는 아닌가?’라는 질문을 할 때도 생긴다.  이모두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주위 상황과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볼 때 생기는 의문들이다.

제자들의 혼돈에 주님은 되려 질문하신다.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돌이 되느냐?’  ‘걸림돌’이라는 단어는 마 11: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에서 ‘실족’이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다.  주님을 따르는 것에 대해 주님만은 나에게 실족의 이유가 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따르고 보니 전혀 내가 예상하고 바라던 분이 아니었을 수 있다.  소위 ‘만사형통’을 바랐는데, 따르고 보니 ‘만사포기’ 해야함을 알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주님이나 주님의 말씀이 걸림돌이 아니라 우리의, 혹은 제자들의 잘못된 바람 자체가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밝히 말씀하신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생명의 떡이라고 자꾸 말해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 가는 것을 보면 어쩌겠느냐’ 이 말씀은 ‘성육신’하신 주님은 보기에는 인간과 완전히 똑같아 보이고, 물론 완전히 같지만 (죄는 없으시고) 그의 살과 피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분이심을 말씀하신다.  원래 있던 곳으로 올라 가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중요한 대답이 있다.  처음으로 ‘영’을 말씀하시면서 앞에서 말씀하신 모든 것이 바로 ‘영’이라는 것이다.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영적인’ 것이다.  그 누구도 당시 주님의 몸 자체의 살을 뜯어 먹거나 피를 받아 마신 사람은 없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영’이다.  살리는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 (육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육이라는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왜 주님은 ‘하늘의 떡’ 등을 말씀하시면서 시원하게 ‘영’에 대해 먼저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빙빙 돌려 말씀하셔서 사람들이 당신을 등지게 하셨을까?  ‘영’이라는 문제가 너무도 중요한 동시에 65절에서 다시 한번 말씀하시지만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기 때문이다.  ‘영’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주님의 말씀은 뜬구름 잡는 것 같이 들릴 수 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의 ‘너희도 가려느냐?’ 라는 질문에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니다’라고 답한다.  주님은 제자들을 택한 것은  당신이심을 먼저 말씀하시며 동시에 ‘너희 중 한 사람은 마귀’라고 말씀하신다.  아, 정말 쉽지 않다.  주님이 친히 택하신 제자 중 하나가 마귀라니… 그리 쉽진 않다.  그래서 믿고 또 알아가야 한다…

주님, 인간의 계산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은 답도 견적도 나오지 않습니다.  영적인 것이기 때문임을 배웁니다.  하나하나 믿음으로 나가고 그 때마다 새롭게 알고 체험하게 하소서.  겸손함으로 주께와 묻게 하시고 영이 더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