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말씀을 읽어보면 주님의 말씀하시는 톤이 안타까움을 넘어서 책망하고 계시는 톤 같이 들린다.  그런데 그런 이유는 유대인들이 깨닫지 못해서이다.  답답하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신념과 여러 의식들의 본질적 의미는 그들 자체가 아니라 메시야 즉 그리스도이며, 붙들어야 할 것은 구약 성경 (기록들)을 통해 약속하신 성취여야 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사실을 그들 앞에서 밝히 말씀하시는데 도무지 깨닫는 이들이 없다.

 

사실 객관적으로 본다면 그들이 깨닫는 것은 무리고 주님 역시 오히려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화를 돋우려고 하시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내가 정말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따라 산다고 하지만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가?’ 

 

재미있는 것은 주님께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로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구약에서는 영생에 대한 개념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  구약의 대부분은 율법과 역사를 기록했고 거기에 따라 종교적으로 많은 인간의 ‘영광’을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영생에 관한 것은 창세기 부터 나온다.  그리고 사실은 그것이 핵심이다.  주님은 ‘성경’과 ‘영생’ 이라는 말을 하실 때 아마도 아래의 구절들을 말씀하신 것 같다.

 

(창 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시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단 12:2)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구약 많은 부분 중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약속은 율법을 잘 지키면 만국 중에 뛰어나게 되어 잘 먹고 잘 살고 안전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이지만, 사실 근본적인 핵심은 ‘원래의 모습’ 즉 창세기에서 보여준다.  영생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생명으로 인간도 영생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창조하셨지만, 죄로 인해 타락하고, 몸의 약함으로 병들고 죽게 되었다.  하지만 성경은, 그리고 구약 조차도 영생이 원 모습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실 주님의 말씀은 논리적이다.

  1. 구약에서 하나님 약속은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있지만 그 핵심은 영생이다.
  2. 그래서 너희들이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 생각하고 성경을 읽는다.
  3. 그런데 사실 성경은 나를 (주님) 말하고 있다.
  4. 하지만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해 나에게 (주님) 오기 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그들의 실상을 말씀하신다.

 

  1.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한다. 즉 인간이 만들어낸 영광은 구한다. 하지만 유일하신 하나님의 영광은 찾지 않는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를 (예수) 믿지 않는다. – ‘영광’이라는 단어는 빛이 충만하게 비취는 것인데 하나님의 나타나심이다.  즉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없는 영광은 인간의 영광이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바로 예수님인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영광만 구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은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면 정말이지 너무나 당연하고 맞는 말씀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1. ‘고발’이라는 말은 법적 용어인데 그 어원이 ‘카타’ 즉 ‘밑으로’라는 단어와 ‘아고라’ 즉 ‘시장 market’ 으로 많이 번역되는 단어의 합성어 인데 ‘공중집회, 공중변론, 선거, 재판, 회집’ 등의 여러 가지 뜻도 있다. 결국 이 단어는 대중 앞에서 안 좋은 말로 공격하는 것인데 보통 재판장 앞에서 하는 것이다. 주님은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을 고발하는 이가 오히려 그들이 바라는 (믿고 의지하는) 모세라고 하신다.  왜냐면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율법 자체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 그래서 모세가 기록한 것은 주님에 대한 것인데, 얼핏 보면 모세는 율법만을 준 것 같지만 모세의 모든 율법과 종교 의식과 근본 핵심은 모두 주님을 말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모세 오경’ 전체 내용의 핵심은 마태복음 19:8 주님 말씀의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의 ‘본래’를 가리키고 있으며 그 본래가 주님이심을 말씀한다.

 

오늘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은 과연 ‘성경적’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주님께서 그러한 모든 일들을 옆에서 보고 계신다면 과연 무슨 말씀을 하실까.  많은 것들로 인해 오히려 예수님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  믿음 생활은 단지 주님을 따르고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일 뿐 그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외에 하는 것은 결국 서로의 영광을 취하려는 허무한 노력일 뿐이다.

 

주님, 무언가 주님을 위해 하겠다는 생각, 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나만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립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주님 한 분 뿐임을 다시 고백합니다.  주님만을 나의 영광으로 취하고 성경 전체에서 말씀하는 분이 주님이심을 다시 깨닫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