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누구든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고 생각했었다.  즉 교육과 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요즘은 nurture보다는  nature 즉 타고난 것에 대해 더 중점을 두는데 학술적으로도 증명이 되었다.  특히 예체능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월등히 교육적인 성취도도 뛰어나다.  결국 출생에 비밀이 있고 태생의 문제이다.

물론 교육과 훈련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월등히 뛰어난 인재는 타고나야 한다는 것이다.  개나 돼지를 아무리 교육시킨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개에게 고양이처럼 울도록 훈련한다고 그것이 가능할까?  결국 삶의 모습은 그가 소유한 생명의 문제이다.

요한복음 3장의 첫 부분을 읽을 때 마다 주님께서 우리 말로 말씀하셨더라면 어떻게 대화를 하셨을까  궁금했다.  원래 구어체를 쓰게 되면 나이에 상관없이 '~더라 ~하오' 등으로 쓸 수 있겠지만, 현대어 식으로 주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기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왜냐하면 지금 주님은 서른을 갓 넘은 젊은이고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이다.  아마도 나이가 적어도 50은 되지 않았을까?  나이만으로 본다면 신입사원 (아니면 대리?)과 부장과의 대화 정도 된다.  물론 주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지만 니고데모라는 인물에 대해, 그것도 남의 눈을 피해 밤에 올 정도로 주님을 한번 만나서 대화해 보고 싶었던 이에게 주님은 복음을 완전히 드러내놓으시는데 아마도 사랑스럽고 인자하며 부드럽고 예의를 갖춘 어투를 사용하지 않으셨을까?  물론 권위도 넘치신 말씀이셨겠지만.

그래서 아마도 이런 대화를 하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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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 선생님, 우리가 보니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하시는 이러한 표적들을 아무도 할 수 없으니까요.

예수님: 아멘 아멘으로 말씀드리지만 사람이 위에서 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니고데모: (&^$%$ ??) 사람이 늙었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어머니의 태 속으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 아멘 아멘으로 말씀드리지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부터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왕국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육 (싸르크스) 으로부터 태어난 것은 (만들어져 온 것)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만들어져 온 것은) 영입니다.  제가 당신에게 위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마세요.   바람 (영과 동일한 단어)이 임의로 불지만 당신이 그 소리는 듣고 있어도 어디에서 오고 있는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지요.  성령으로부터 태어난 각 사람도 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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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영은 영을 낳게 한다는 말씀을 하시며 우리가 태어난 육신의 생명은 단지 육신의 생명일 뿐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존재임을 말씀한다.  창세기 6:3에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는데, 하나님께서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사람이 '육신이 됨'임을 말씀한다.  이 '육신'이라는 말은 '죽을 몸'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려면 육으로 태어난 몸으로는 할 수 없음을 말씀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관계가 있으려면 ‘위에서’ 태어나야 한다.  ‘거듭나다’라고 번역한 단어인 ἄνωθεν (아노뗀) 이라는 단어는 ‘위에서 부터, 높은 곳에서 부터, 하늘 혹은 하나님으로 부터, 처음으로 부터, 새롭게, 다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막 15:38에서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을 때의 그 ‘위로부터’와 같은 단어이며, 요한복음 3:31 ‘땅’과 대조해서 ‘위로부터’로 번역한 것 역시 같은 단어이다.

즉 이러한 ‘위로부터의’ 거듭남은 단지 마음을 새롭게 한다거나 철이 든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말씀처럼 신비롭게도 ‘위에서’ 알지 못하게 일어나는 (태어나지는, 만들어져 오는) 일이다.  물론 그것은 예수님 ‘믿음 (3:16)’을 통해서지만 그것은 사람의 상식과 언어 즉 ‘육’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신비로운 것이다. 

또한 그 ‘믿음’은 ‘물과 성령’을 통해 확실시 된다.  물 세례 (혹은 침례) 그리고 성령을 통하는 것인데, 이 단어들에 쓰인 전치사는 ‘에크’ 즉 ‘밖으로’의 뜻이다.  즉 ‘밖으로’가 되려면 먼저 ‘안으로’가 있어야 한다.  하늘 위에서는 ‘안으로’가 이루어졌고 이제 땅에서 ‘물과 성령’ 밖으로 즉 그 둘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고 위에서 난 것을 확증한다.

물을 통과하는 것은 과거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태어났던 나의 육적인 생명이 물로 끝나고 이제는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서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사실 침례는 죄를 씻는 의미보다는 내가 끝난다는 의미이다.

주님, 다시 새롭게 위에서부터 태어나려면 내가 먼저 끝나야 함을 압니다.  그리고 이미 끝났음을 압니다.  끝난 것에 대해 미련 두는 미련한 것에서 돌이켜 주시고, 세상의 영광이나 위로나 자랑을 구하지 않게 하소서.  위로부터 난 생명이 어떠한 것인지 그 영광과 능력의 크심이 어떠한지 오늘 묵상하게 하소서.  위로부터 하나님 생명으로 물과 성령을 통해 태어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