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라어의 전치사 중 하나인 eis는 영어의 into, unto, to, towards, for, among 등의 뜻이 있지만 into의 뜻이 가장 강하다.  요한복음 1장에는 이 전치사가 7번 나오는데, 오늘 말씀 9 11 12 18 절에 나온다.  원어를 번역할 때 현지어의 어감과 의미에 가장 적당하며 읽고 이해하기 부드러운 단어를 쓰기 때문에 영어 번역조차 이 ‘eis’에 대해 별로 큰 구분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단어는 참으로 중요한 전치사라고 본다.

9절의 ‘세상에 와서’는 원어를 보면 ‘세상 안으로 와서 (into)’이다.  로고스요 생명과 참 빛이신 주님께서 세상 안으로 오셨다.  성육신은 단지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 뿐만 아니라, 당신의 소유이신 그러나 타락한 세상 안으로 오심도 포함한다.

11절의 ‘자기 땅’으로 번역했지만 원어에는 ‘땅’이라는 단어는 없고 단지 ‘his own’이다.  즉 자기의 소유로 오셨는데, 그 부분 역시 ‘소유 안으로 오셨다’는 뜻이다.  당신의 소유 안으로까지 낮아 지셨다. 주님의 긍휼은 지옥에까지 미친다.

그런데 그냥 ‘to’라는 단어를 써도 됐을텐데 굳이 eis라는 단어를 쓴 것은 아마도 12절 세번째 eis때문인 것 같다.  12절을 원어로 굳이 다시 번역하자면 “그러나 영접하는 자들 마다 (혹 취하는 자들 마다) 하나님의 자녀 (혹은 후손)가 되는 권세 (혹은 권위, 권력, 자격, 권리 등)를 주셨으니 곧 그 이름 안으로 믿는 자들에게이다.”로 할 수 있겠다.  여기도 역시 eis가 씌였다.  보통 ‘믿으라’고 할 때 영어 번역처럼 ‘in (en)’을 쓰지만 유독 요한복음 1장에서는 eis를 쓴다.  즉 이 문제는 단지 ‘믿는’ 문제가 아니라 위치와 관계된 믿음임을 말한다.

요한이 소개하는 복음은 맨 처음부터 계셨던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 (부정적으로 쓰이는 단어인 싸르크스, 14절) 으로 오셨는데, 세상이라는 당신이 지으신 시스템 그러나 타락한 시스템 '안으로' 직접 들어 오셨고, 자기의 소유 '안으로' 낮아지셨고, 당신의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영접하는 자 혹 그를 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후손이 되는 자격, 권세, 권위를 주셨는데 곧 그의 이름 '안으로' 믿는 이들임을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18절의 eis로 주님에 대한 온전한 계시를 펼친다.  누구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지만, 아버지 품 ‘안으로’ 계신 독생하신 아들이 펼쳐 보이셨다.  ‘독생’이라는 단어 ‘μονογενής’ 는 ‘모노’와 ‘게네스’의 합성어로 ‘모노’는 유일한 혹은 하나라는 뜻이고 ‘게네스’는 ‘생기다, 태어나다, 발생하다’ 등의 뜻이다.  즉 하나님의 유일한 복사체로서 말씀이신 아들 예수는 아버지로부터 오신 유일하신 분인데, 동시에 그 분은 아버지 품 ‘안으로’ 계신다.  즉 아들 하나님이 아버지로 부터 오셨고 다시 아버지의 품 ‘안으로’ 계신 것 처럼, 믿는 이들이 아들의 이름 ‘안으로’ 믿을 때, 세상과 어둠에서 나오는 위치의 변화가 있고, 아버지의 품 ‘안으로’ 있게 된다.

세상 시스템과 가치관 속에 계속 속해 있기를 고집하면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부리려고 바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권위를 가지려면 우리의 소속이 바뀌어야 하고 우리의 위치가 하늘에 속하고 높아져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써야한다.  겸손해야 한다고 권세를 쓰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적이고 육신에 속한 권리는 포기할 수 있어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는 포기할 수 없다.  독생하신 아들 안으로 믿는 그 권세로 악한 영들을 대항할 수 있고, 아버지 안으로 올 수 있다.

주님, 아버지 품 안으로 계시고 세상 안으로 오시고 믿는 이들 안으로 오셔서 우리로 예수의 이름 안으로 믿게 하시고 주님과 더불어 아버지 안으로 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러한 위치와 자격과 권세를 쓰기 원합니다.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기 원합니다.  가진 것 없어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독생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서기 원합니다.  올해 한 해 주님 안으로 천국 안으로 더욱 들어가게 하시며, 권세를 쓰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