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시편 1편의 구약의 복에 이어서 오늘 말씀은 신약의 복을 말씀한다. 등장 인물이 셋이 나오는데 예수님, 제자들, 그리고 군중들이다. 산에 올라가 가르치시는데 무리들이 있었고, 제자들은 말씀을 잘 듣기 위해 예수님 곁으로 가까이 온다. 하지만 무리 역시 그 주위로 모여 말씀을 들은 것을 알 수 있는데, 7장 마지막에서 그들이 듣고 놀랐다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의 팔복은 ‘천국’과 관계 되어 있다. 첫번째 복 부터가 ‘심령이 가난함’과 ‘천국의 소유’를 말씀하고 있다. 즉 이 팔복은 세상의 복이 아니라 천국 복이며 천국 복음 즉 천국 자체이다. 그래서 무리들은 물론 제자들조차 전혀 새로운 천국의 개념인 산상수훈의 내용을 따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우기 이 ‘복’의 개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명사로서의 ‘복’ 혹은 luck, blessing이 아니라 ‘행복하다 혹은 평안하다’는 마음의 개념이다. 그래서 이미 만족하고 평안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별로 복스럽지 않게 들린다. 마음이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 추구하고 누릴 수 있는 복이다.
그런데 잘 세어보면 팔복이 아니라 구복이다. 왜일까? 팔복의 목록을 보면 우리 말로는 ‘~하는 자’라고 번역되었지만 원어는 4절 ‘울고 있는 자들’과 6절 ‘배고파하고 목말라 하는 자들’ 그리고 10절 ‘박해를 받아온 자들’ 빼고는 모두 명사형이다. 즉 3절 ‘빈자’ 5절 ‘온유자’ 7절 ‘긍휼자’ 8절 ‘청결자’ 9절 ‘화평자 (peacemaker)’ 등 모두가 복수 명사형이다. 이들은 11절 말씀의 ‘너희’ 즉 주님을 바로 앞에서 보지는 못한 자들이지만 궁극적으로 하늘을 바라며 살아왔던 혹은 살아오는, 과거 혹은 당시 하나님의 백성이고, 메시야와 복음을 기다리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11절은 그러한 사람들 중에 ‘너희’인 제자들이 나타나고 그 관계 안에서 천국이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말씀한다. 즉 앞의 팔복의 결과로서 천국이신 주님을 따를 때 나타나는 ‘욕먹고 박해받고 거짓 증거를 받고 악한 말을 듣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제자들인데, 그들은 행복하다. 그러고보면 정말 그들이 행복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들이 행복한 것은 하나님 본체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했었고, 또한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막 10:30에는 이생에서 받는 복이 백 배나 있지만 박해를 겸하여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학생은 지식만 전수 받지만 제자는 스승을 따른다. 주님이 고통의 길을 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편히 살 수 있지만 그러한 권리를 포기하고 제자로서 고통의 길을 자발적으로 갈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
주님, 편히 사는 것을 사랑하는 제 마음을 움직이시고, 주께서 기꺼이 가신 길을 따라 갈 수 있게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