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들이 욕을 먹는 이유는 환난과 고통 중에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서 같은 민족과 나라를 저버리고 팔아먹고 일제에 붙은 것 때문이겠다. 결국 ‘우리’라는 개념은 없고 ‘나 자신’만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 공동체는 자신의 유익만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그 활용가치가 없어지면 배신하는 대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그들에게 있어 ‘공동체’란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여서 교회를 이용해 먹고 자신의 배만 위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교회는 공동체가 아니다. 어렵고 위험한 시기에는 비판하고 등돌리고 숨어버린다.
하지만 오늘 말씀의 예레미야는 망하는 유다에 대해 마치 자신 개인의 일인양 슬퍼한다. 그리고 12절에 말한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있는가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그의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나라가 망해도 자신들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런 상황이 그들에게 정말 진짜 관계없는가 물으며, 자신이 기꺼이 짊어진 고통에 함께 동참할 수 있는지 외친다.
그러한 상황이 예레미야 자신 당사자에게는 큰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며 (12-14절), 그리고 유다 땅을 ‘자신의 영토’라고 여겼다 (15절). 확실한 주인 의식이다.
요즘 한국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말로 시끄럽다. 현실화될지 아닐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의 상황에 대해, 그리고 미국 이민 사회에 대해, 우리 자녀들의 상태에 대해 나몰라라 한다면 그것은 공동체를 거부하는 것이고, 나 혼자만 구원받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구원하지 못하는 믿음이다.
(행 14:9)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함께 가는’ 것은 힘들고 괴롭고 여러모로 많은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있어야 내가 있고 공동체 안에 하나님 나라, 즉 주님께서 계심을 믿는다면 (눅 17:21) 공동체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주여, 제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지요. 남을 생각하려는 마음은 정말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역사하실 때 공동체를 위해 마치 내 자신의 일인양,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인양 눈물로 기도하게 됨을 압니다. 우리 가운데 천국을 이루시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