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절 - 천 년이 차매 (혹은 되매) 사탄이 그의 감옥에서 놓이게 될 것이다.
8절 - 그리고 다시 땅의 사방 만국을 미혹한다. 그런데 땅의 사방이 곡과 마곡이라고 한다. 곡은 '산'이라는 뜻이고 마곡은 '곡의 땅'이라는 뜻으로 둘 다 이스라엘 북쪽을 말하는데 이들이 '사방'이라는 뜻은 아마도 이 이스라엘 북쪽의 땅이 만국으로 사탄을 따르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주님을 대적하는 전쟁을 하는데 거기에 참여하는 이들이 천 년 후라서 그 수가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진다. 어떻게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그의 신실한 백성들이 공의로 다스리는 세상에서 이렇게 많이 미혹될 수 있을까? 이들은 이 땅의 백성들 즉 아직도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 사탄을 따르지 않는 많은 이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이 무리의 사람들은 최종적으로 '걸러지는' 이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9절 -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단수)과 사랑받는 성을 (아마도 예루살렘?)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린다. 싸워보기도 전에 그들은 전멸당한다. (그런데 얼마 안있어 12절에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본다. 그리고 또 불못에 던져진다...)
10절 -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의 연못 즉 전에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던져진 못에 던져졌다. 그들은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을 것이다. 이제 악은 끝났다.
11절 -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가 계시는데, 땅과 하늘이 그 얼굴 앞에서 도망하여 그들의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이 말씀은 땅과 하늘이 사라졌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땅과 하늘은 그 앞에 설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13절에 다시 바다가 나오기 때문이다.
12절 - 드디어 천 년이 지나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원어는 하나님 앞에) 서 있'게 된다. 즉 이제는 모든 죽은 자들이 '심판의 부활'로 다시 살게 됨을 본다. 두루마리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두루마리 책(단수)이 펴졌는데 생명책이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았다. 이 '행위들'이라는 단어는 'ἔργον'로 '비지니스나 직업 즉 살면서 제일 많이 시간을 보낸 것 그리고 삶의 모습과 스타일과 내용 혹은 했던 일' 등을 뜻한다. 문장을 잘 읽어보면 심판을 받게 되는 그들의 행위들은 '책들 (복수)'에 기록되었다. 아마도 많은 행위들을 기록하느라 여러 개의 책들이 필요한 것 같다. 반면에 생명책은 단수이며 15절을 보면 거기에는 사람들 이름만이 기록된 것 같다.
13절 - 바다 역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는데, 왜 12절의 죽은 자들과 동시에 일어나서 심판을 받지 않고 시간적으로 후에 받을까? 만약 같은 시간에 받았다면 나눠쓰지 않고 땅과 바다의 모든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어야 한다. 즉 이 바다에서 내어준 이들은 그냥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다른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망과 음부 역시 그들 가운데 있는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모두 그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자들, 주님을 믿어 영원히 죽지 않는 이들이기 때문에 이 사망과 음부에서 내어준 이들 중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
14절 - 사망과 음부가 죽은 자들을 내어 준 후에는 그들 역시 불못에 던져진다. 그러고 보면 이 불못은 그냥 불이 아니라 사망과 음부까지도 태워버리는 특별한 불못이다. 이 후로는 더 이상 사망이 없고 죽은 자들을 가두어 놓는 음부도 필요 없게 된다. 사망이 없기 때문이다.
15절 -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 것 처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심판 후에 불못에 던져진다. 무섭다. 안타깝고 슬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주님은 믿는 이들을 창세전에 이미 택하셨다. (엡 1:4) 그런데 이 생명책의 기록은 '현재 완료형'으로 과거 완료가 아니다. 즉 이 생명책의 이름은 계속해서 업데이트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영원 전에 이미 택하심 받았지만, 그 구원은 역사를 통해 기록된다. 예정은 하나님의 것이고 복음 전해서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몫으로 주셨다.
주님, 믿는 이들의 구원은 주님을 믿음으로만 가능함을 압니다.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시고 마지막까지 구원하시는 주의 능력을 봅니다. 이 큰 구원의 소식을 우리 삶 속에 살아낼 수 있도록 성령 충만케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