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은 망하는데 한 시간에 망한다. ‘한 시간’이라는 구절이 18장에는 세번 나오고 ‘하루’에 망한다는 말도 8절에 나온다.

9절 – 땅의 왕들은 권력이 있게 보이지만 결국 그들의 권력은 절대권력이 아닌 바벨론에 빌붙은 권력이다.  바벨론이 불타며 망하자 그들은 울고 가슴을 친다.

10절 – 한 시간.  그들은 그녀의 고통을 무서워 하는데 이 ‘고통’이라는 단어는 ‘고문’을 뜻한다.  성도들이 고문 당했듯이 바벨론도 고문당한다.  한 시간에 심판이 이른다.

11절 – 국제 무역 구조를 보면 선진국들이 무역을 독점하고 가난한 나라들의 물품을 싸게 사들인다.  빈소국들은 국민들이 먹을 양식을 위해 농업이나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들과 무역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재배 혹은 육성한다.  그리고 그 이익은 국민이 아니라 상인들 특히 선진국과 연이 있는 이들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바벨론이 무너질 때 그들은 더 이상 그들의 상품을 팔 곳이 없어진다.

12-13절 – 무역품 목록이다.  무역품들은 모두 가치가 있는 물품들인데 그 내용 중 지금은 별로 돈이 안되보이는 ‘계피’가 있다.  이 ‘계피’는 구약에 두번 그리고 신약에는 계시록에 단 한번 나오는 단어로 그 역사가 오래다.  악취를 없애거나 살코기의 냄새를 제거하는데 쓰였고, 약품으로도 쓰였다.  15세기 세계탐험을 시작하게 된 동기 역시 계피인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커피처럼 국제 무역에서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소’라고 번역된 단어 πρόβατον는 ‘네발 가진 짐승’이란 뜻이다.  그러고 보면 아직도 이 목록의 것들이 무역에서 거래되고 있다.  물론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여기 목록에 없다.  하지만 ‘그릇’으로 번역된 단어 σκεῦος 는 ‘집에서 쓰는 여러 종류의 기구’ 라는 뜻도 있다.

이 목록 가운데 마지막으로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 있는데, ‘종’은 ‘몸’이라는 뜻으로 신체적인 노동으로 섬기는 이들 말하고 ‘영혼들’은 ‘프슈케’라는 단어로 ‘목숨’ 혹은 사람들의 정신이나 시간등을 의미할 수 있다.  이 ‘혼’은 몸이 죽어도 죽지 않는 몸과는 다른 부분을 말하는데, 주님께서 마 10:28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

14절 – 바벨론을 2인칭으로 직접 심판의 말씀을 하신다. 

15절 – 다시 고통은 ‘고문’의 뜻이다.  바벨론의 독점무역에 빌붙어 치부한 상인들은 바벨론이 망하는 것을 보고 걱정하는 것만 아니라 그 고문에 두려워한다.

16절 – 이 말은 상인들의 말이다.  ‘꾸민것’ 즉 ‘옷입다’라는 뜻인데, 계시록에 많이 나오는 단어이다.  3:5절 ‘흰 옷 입은 사람들’ 역시 이 단어이다.  성도들은 흰 옷을 입지만 바벨론은 사치스러운 것으로 자신을 꾸몄다.  그 내용은 17장과 같다.

(롬 13:14 그리고 갈 3:27 등의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의 단어는ἐνδύω 라는 단어로 ‘옷을 입다, 옷안으로 들어가다’ 즉 위의 ‘꾸미다’는 ‘두르다’는 뜻인 반면 이 단어는 정말 몸이 완전히 옷 안으로 들어가는 뜻이다.  엡 6:11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 역시 이 단어가 쓰였는데, 그 뒤의 13절에는 전신갑주를 취하라 즉 ‘들어라’고 한다.)

17절 – 한 시간.  멸망의 말을 선장과 선원과 선객들이 한다.

철도의 발달로 국가간의 무역이 빨라졌지만 그래도 배로 수송하는 무역이 아직도 많다.  아시아와 유럽을 관통하는 철도를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지만 국제정세로 불가능해서 이제까지 무역로는 배를 통해 바닷길로 돌아돌아가는 방법이 대부분이었다. 

18절 –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즉 ‘이런 성이 없었는데…’

19절 – 한 시간.

20절 – “그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늘아! 그리고 성도들 사도들 그리고 선지자들 너희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녀를 심판하셨다.”   여기서 ‘하늘아’만 여격이고 뒤에 따라오는 성도들 사도들 선지자들은 kai를 넣어 연결했다.  그런데 성도들 과(kai) 사도들 하지 않고 성도들 사도들을 함께 묶었다.  사도직은 분명 거룩하고 특별한 것이지만, 그 뜻이 ‘대사, 메신저, 커미셔너’ 등으로 주님께 구원받은 성도는 그 삶 속에서 분명 부르심 받았다.  물론 고전 12:29에 ‘모두 사도냐?’라고 한 것 처럼 교회 안의 은사로서는 사도의 직분이 분명 구분되지만, 부르심 받아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와서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는 것 (벧전 2:9) 에는 모두가 사도들이다.

21-24절 – 바벨론에 대한 천사(메신저)의 심판의 선포이다.  그런데 21절에는 바벨론을 대명사로 말하다가 22-23절에는 14절처럼 바벨론에 대해 2인칭 즉 ‘너’ 로 부른다.  즉 바벨론에게 직접 저주하는 심판의 말을 한다.  바벨론에 대해 3인칭 형식으로 객관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면전에 대고 심판한다.  그러다가 24절에는 ‘그녀’로 다시 객관적인 입장에서 성도들에게 설명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세상 역사를 통해 많은 각 시대의 헤게모니가 흥망성쇠를 거듭했지만, 영적으로 보면 그 뒤의 모습은 바벨론이다.  그래서 바벨론은 ‘큰 성’이고 그 안에서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발견되었다.

세상에 쌓아놓은 것이 많으면 당연히 세상에 소망을 갖게 된다.  세상에 투자하면 거기서 얻을 수확을 기대하게 된다.  마음이 땅에 있게 된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그 땅 바벨론은 한 시간에 망하게 됨을 경고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일은 그리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투자를 잘해서 잘 먹고 사는 것 같고, 그런 사람들이 부러워 보인다.  나의 믿음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도 투자해서 수익을 내고 그 이익으로 남의 눈치 안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원하던 때가 있었다.  사실 아직도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안다.  믿는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되어 각자의 역할을 감당해 내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경제 구조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