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 이것들을 본 후에 요한은 또 다른 천사 (메신저)를 보았는데 큰 권세를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의 영광 때문에 땅이 밝게 비춤 받았다.
2-3절 – 그가 큰 소리로 힘있게 “떨어졌다 떨어졌다 위대한 (큰) 바벨론이; 그리고 잡귀(다이몬)들의 처소와 모든 더러운 영들의 우리와 모든 더럽고 역겨운 새들의 우리가 되었다. 그녀의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부터 모든 나라들이 마셔왔고, 땅의 왕들이 그녀와 음행하였고, 땅의 상인들이 그녀의 사치의 능력으로 부하게 되었다”라고 외친다.
원래 이 위대한 바벨론 즉 이 음녀의 모습은 12, 13절 말씀처럼 땅의 영광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제 무너져서 잡귀들이 들끓게 되고 더러운 영들과 더럽고 역겨운 새들의 우리가 된다.
성경에서 ‘새’라는 존재는 많은 경우 부정적인 것으로 쓰였다. 물론 마 6:26 ‘공중의 새를 보라’ 등에는 부정 혹은 긍정이 없이 그냥 ‘조류’를 뜻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위의 ‘새’는 계시록에서만 기록된 유일한 단어로 사복음서에 기록된 ‘조류’를 뜻하는 즉 날개있는 생물을 뜻하는 πετεινόν 라는 단어가 아닌, ὄρνεον 라는 단어가 쓰였다. 그리고 이 단어는 다음 장에서 사람들의 살을 먹는 그런 류의 새임을 알 수 있다. 즉 영화롭던 바벨론은 더럽고 역겨운 새들, 살을 뜯어 먹는 새들의 우리가 된다.
그런데 이쯤 읽어보니 이 위대한 바벨론과 미국이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적으로 기독교 국가임을 표방해서 대통령 취임때도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하고 보수적인 전통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국제적으로 영향을 주는 모습은 음행과 사치풍조를 선도하며 경제적으로 큰 리더십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물론 각 시대의 헤게모니는 우선 무력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국제 관계를 주도했기 때문에 미국이라고만 볼 수는 없지만 이 마지막 때에 미국은 분명 그러한 모습이 있고, 동시에 요즘 힘들어하는 모습 또한 무너지는 바벨론의 모습이 엿보인다.
‘사치’라는 말은 영어로 ‘luxury’라는 단어로 해석할 수 있는데, 사실 사치품 소위 말하는 명품이 있어야 가치를 유발하고 경제를 돌릴 수 있다. 그래서 사치품은 경제에는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성경에서는 이 luxury라는 것이 죄임을 선포한다. (눅 7:25 indulge in luxury 눅 16:19 lived in luxury 약 5:5 You have lived on earth in luxury and self-indulgence. You have fattened yourselves in the day of slaughter. 그리고 계 18 등)
그러고보면 성경은 자본주의를 옹호하지 않는다. 물론 상대적인 공산주의는 이상일 뿐이다. 성경은 있는 것을 서로 나누는 것을 말씀한다. 달란트의 비유도 돈을 배로 남기는 것으로 이해하면 곤란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주신 귀한 것으로 우리가 힘써 섬김으로 그와 똑같은 만큼을 얻고 남기는 것이 바로 달란트의 비유의 핵심이다.
4-5절 – 그리고 요한은 하늘로부터 나는 다른 음성을 들었는데 “거기서 나와라 내 백성아 그래서 그녀의 죄들에 참여하지 말고 그녀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녀의 죄들은 하늘까지 쌓였으며 하나님은 그녀의 불의들을 기억하신다”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절까지 계속해서 심판의 말씀을 하신다.
멋있고 편하고 안전한 것에서 나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유혹을 이기는 것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안전하고 편안한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경고하시고 그 안락함에서 나오라고 하신다.
사치는 자기 만족이고 자기 사랑이고 자기 위안이며 동시에 많은 이들의 시간과 노력을 자신을 위해 취하는 것이기에 악한 것이다. 물론 경제면에서는 사치품이 활발하게 거래가 되어야 경제가 살겠지만… 그래서 사치품에 대한 태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늘의 음성은 바벨론의 행한 것들이 죄들이며 그 죄값으로 재앙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한다. 지극히 정상적으로 생각되는 일상의 경제활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들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복지나 연금, 보험 등을 생각하게 된다. 복지는 필요한 것이지만, 삶의 목표가 복지나 연금이 되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주님을 나의 유일한 복지로 삼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 아닐까… 내가 복지와 연금 그리고 보험을 주님보다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본다.
6절 -그녀가 너희 (하나님의 백성)에게 준 그대로 그녀에게 갚아주고 그녀의 행위의 갑절들에 대해 갑절들로 주되 그녀가 섞은 잔에 그녀의 갑절로 섞어 주라
문법을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따따블 아닐까? 구약에서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복수를 금했지만, 음녀 바벨론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복수는 따따블이다. 아닌게 아니라 삭개오가 주님께 고백했을 때 그가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했다.
7절 – ‘사치’라는 말이 다시 나온다. 사치라는 단어 στρηνιάω 는 στρῆνος 라는 말에서 왔는데 그 뜻이 ‘럭쥬리’ 혹은 ‘부러질 지경이 되기까지 힘에 과하도록’이라는 뜻이다. 수입은 부족한데 페이먼트 하기에도 힘겨운 비싼 것을 샀다면 그것은 사치이고 문제다.
바벨론 즉 세상의 시스템이 이런 모양이다. 은행이나 보험 금융 등은 그 가진 것의 적어도 8배를 불려서 융통시키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신용을 바탕으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바탕은 사실 위태롭다. 이제까지는 몇 번의 사고 외에 잘 돌아가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부분에서 많은 구멍들이 있다. 특히 요즘 모든 금융 시스템이 컴퓨터 시스템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보안들에는 많은 위험이 노출되어 있다.
바벨론은 자신을 영화롭게 하고 사치하였는데, 그만큼 고통과 애통으로 갚아준다. 여왕이라는 위치와 시스템이 그녀를 지킬 것으로 생각했고 소망없는 과부가 아니어서 결코 슬픔을 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8절 – ‘그러므로’라는 것은 위의 그녀의 태도이다. 그녀는 그녀의 위치와 시스템이 영원히 자신을 지켜줄 것으로 신뢰했는데 그것이 그녀의 올무가 되었다. 갑자기 하루만에 그녀에게 죽음과 애통과 흉년의 재앙이 닥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극렬한 불에 살라지게 될 것이다. 그녀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루만에 죽음과 애통과 흉년의 재앙이 닥치는 것은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컴퓨터 시스템화 되어가는 현대를 생각해 보면 시스템이 멈출 경우 모든 경제활동은 중지된다. 특히 ‘cashless society’를 지향하고 있는 미래 사회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마켓에서 캐시 레지스터가 한번 고장난 경우가 있었는데 물건 사기 위해서 오래 동안 줄을 서야 했고 현금으로만 결제가 가능했다. 물론 이러한 위험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대비를 하고는 있지만 시스템 연쇄 사고의 시나리오는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현재와 미래의 위험 요소이다. 더우기 앞의 많은 재앙들은 안정적인 전기의 공급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아무리 백업 시스템을 해 놓아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심판 하시는 하나님은 강한 자이시다.
주님, 오늘 음녀 바벨론에서 나와야 할 것들에 대해 보여 주시옵소서.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주 외의 것들을 의지하려는 것을 드러내 주시고, 그것들로부터 자유하게 하소서. 미국에 거하는 불체자들 중 믿는 이들이 주님께 위로를 얻게 하시며 천국에 소망을 두게 하시고 하늘의 시민권자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