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절 – 다섯째 천사의 대접은 짐승의 왕좌에 쏟아지며 결과는 그 나라가 어두워지며 (원어에는 ‘곧’이라는 말은 없음)  사람들이 아파서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앞 절의 종기로 인해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았다.  어려움을 당할 때라도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되면 안심이 되지만 어두워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면 그 두려움은 증폭된다. 

 

참빛이신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육신의 눈을 의지해 살았지만 어두움이 엄습해 올 때 자신의 눈의 한계를 알게 된다.  출애굽 당시 애굽에도 같은 재앙이 임했다. 다만 10가지 재앙 중 9번째가 흑암의 재앙이었다.  많은 재앙을 경험한 후 마지막 장자가 죽기 전의 흑암의 재앙은 정말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를 무시무시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움직임에도 제약이 따르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두려움은 아픔과 종기의 고통과 더불어 죽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고통일 것이다.

 

12절 – 여섯째 천사의 대접은 큰 강 유브라데에 쏟는데 강물이 말라서 길이 된다. 유브라데강은 옛 에덴 동산의 위치로 추정되는 지금의 터키 동부에서 시작해서 시리아와 이라크를 거쳐 페르시아 걸프까지 가로지르는 서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인데 이라크를 시작으로 중동부 아시아를 경계삼아 이스라엘을 지키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이 강은 ‘큰’ 강으로 강물이 아직까지는 풍부하지만 이 물이 말라 버린다는 예언이다. 

 

그런데 사실 현대 무기는 비행기도 있고 미사일도 있고 여러 공병들이 있기 때문에 강 하나 건너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다.  마음만 먹고 기회만 되면 강 따위의 존재는 전략상 그리 큰 제약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강의 존재는 전략상 제약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전쟁을 하려고 해도 강이 틀어막고 있으면 좀 더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강이 말라 버린다.  육군이 들어가는 제약이 사라진다.  전쟁을 부추긴다.  이것이 뒤에 나오는 아마겟돈 전쟁이다.

 

강물이 마르는 것은 여섯째 천사의 대접의 결과지만, 현실상 물의 근원이 끊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여러 나라를 가로지르는 큰 강이 말라 버리기 위해서는 어떤 인위적인 일들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21세기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수자원 문제라고 하며 지구 여러 곳 특히 서남아시아, 중극, 아프리카 등에서 강물 수자원 때문에 분쟁이 생긴다고 한다.  강상류 국가들은 수자원 확보를 위해 여러 댐들을 건설하려고 하고 그 밑의 나라들은 여기에 반발한다고 한다. 

 

사실 이미 유브라데 강 곳곳에 12개의 댐들이 설치되었고 이들을 통제하면 물을 제어해서 육군이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얘기치 못한 다른 이유로 강이 마를 수도 있다.  아무튼 강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 (복수)의 길이 준비된다.  이것은 강 동편의 여러 국가들이 전쟁에 참여한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아랍국가를 비롯해 옛 소련 위성 국가들 그리고 중국 한국 일본도 지리적으로는 포함되어 있다.  역사상 헤게모니를 두고 갈등이 생길 때 반드시 전쟁이 발발했는데, 중국의 부상은 세계정세를 볼 때 위태롭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중국의 부상 자체가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13절 – 개구리라는 말로 애굽에 내린 재앙 중 하나가 생각 나지만 여기서는 진짜 개구리가 아니라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다.  개구리는 더럽게 여겨졌기 때문에 용 짐승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 영들이 더러운 영이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라고 하시며 말이 곧 영임을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는 더러운 말들이 나오고 그것은 곳 세 영이다. 

 

14절 – 그 세 영들은 ‘귀신들’의 영들인데, ‘귀신’의 원어는 ‘다이몬’이다.  성경에서 더러운 영적 존재들을 가리킨 말들이 몇 있는데,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었다는 말은 없다.  주님이 바다 위를 걸어 오실 때 그 모습을 제자들은 ‘유령 (팬텀)’ 즉 실체를 알 수 없는 ‘헛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주님께서 여러 ‘귀신’들을 쫓아 내실 때는 이 ‘다이몬’을 쫓으셨다.  즉 사탄 마귀는 아니지만 더러운 영이다.  이들이 세상 왕들 앞에서 ‘이적’을 행해서 전쟁에 참가하도록 그들을 모은다.  이 전쟁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의 전쟁’이다.  즉 이 전쟁은 하나님 날의 전쟁이고 큰 날의 전쟁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이 전쟁은 그 어떤 영적 전쟁같이 주님의 일방적인 승리로 싱겁게 끝난다.

 

15절 – 갑자기 주님은 경고를 하신다.  요한계시록 첫부분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임을 밝혔지만 많은 부분에서 요한이 본 것을 기록했기 때문에 마치 계시록은 ‘요한’의 계시록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계시록은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주님은 다시 도둑같이 오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여기 ‘누구든지’로 번역된 부분에 문제가 있다.  성경에서 ‘누구든지’라고 한 곳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마 5:19’ 혹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 2:21)’ 등과 같이 정말 ‘누구든지’에게 열려있는 것에는 누구든지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여기에는 ‘누구든지’가 아니라 ‘그에게’이다. 

 

즉 더 이상 아무에게나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오심과 관계있는 ‘그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모든 환난과 재앙들에 대해 계시하시는 이유는 이 재앙들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런 이들을 미리 말씀하심으로 믿는 이들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않고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주님은 계속 믿는 이들에게 촛점을 맞추신다.

 

16절 – 아마겟돈이라는 지역은 거대한 평지로 나폴레옹도 큰 전쟁을 치르기에 좋아 보인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물론 현대전은 혹은 미래의 전쟁 양상은 지상전과 육박전을 벗어난 모습이지만 전쟁이라는 것이 항상 전술에만 의존해서 싸우지는 않고 여러 상황과 이해가 얽히게 되는 것을 가만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17-19절 – 일곱째 천사의 대접은 공중에 쏟는다.  이 공중은 ‘허공’ ‘공기’ ‘대기’ 등의 뜻이다.  그러자 큰 음성이 성전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되었다’ 라고 하신다.  ‘게고넨’이라는 단어는 ‘되었다’ ‘발생했다’라는 뜻이며 ‘이루었다’ 라는 뜻은 아니다.  아마도 18절의 사건에 대한 말씀같다.  왜냐하면 뒤의 일들이 같은 단어로 ‘되어졌기’ 때문이다.  즉 음성들과 번개들과 천둥들과 지진(단수)이 ‘되었고’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되었던)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 (되었다)었다.  즉 ‘되었다’ 혹은 ‘이었다’라는 단어가 모두 같은 단어로 이 세 절 안에 다섯 번 나온다.

 

큰 성이 세 부분으로 ‘되었다’  그리고 만국의 도시들도 모두 무너졌다.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에게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주었다.

 

20절 – 그리고 섬들의 도망가고 산들이 찾지 못하게 되었다.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난 것 같다.

 

21절 – 한 달란트는 지역과 시대마다 달라서 약 25킬로그램에서 60킬로그램까지 다양하지만 이런 우박이 떨어지면 가속도가 붙어서 그 파괴력은 폭탄수준이 된다.  재앙이 심히 크다고 했는데, 보통 ‘크다’라는 단어는 ‘메가’라는 단어를 쓰지만, 여기서는 ‘σφόδρα 라는 단어를 써서 ‘심각하게 큰, 수준을 넘어서는’ 재앙이다.  어느 지역에 얼마나 떨어질지 모르지만 이 재앙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주님, 맨 처음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시고 땅과 하늘들을 만드실 때에 주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루셨음을 기억합니다.  오늘 말씀에 주님의 능력의 말씀이 만드신 모든 것들에 심판하시는 것을 봅니다.  인간이 범죄함으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슬픔으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이제 계속해서 사랑으로 경고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경고의 말씀이 나를 붙드시고 내 마음 속에 살아계시기 원합니다.  그 날 주님 앞에 서는 날 부끄러움 당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