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 계속해서 동일한 성전에서 큰 음성이 일곱 천사에게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고 말한다. 성전으로부터 나는 음성이면 분명 하나님의 음성인데, '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이라고 말씀한다. 왜 일까? 아마도 분명히 하시려는 것 같다. 마치 '독도는 우리땅'이면 '우리'가 누구인지 불분명하기에 한국인들 우리 자신조차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해야하는 것 처럼, 하나님도 명확하게 일곱 대접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임을 명시한다.
2절 - 2절부터 시작되는 대접의 심판은 앞의 나팔과는 다르게 단숨에 이루어진다. 심판받는 이들이 정신차리지 못하게 심판이 연거푸 따라온다. 첫째 천사는 대접을 땅에 쏟는데,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났다.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짐승의 표를 받는 행위는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과 같으며 그 표는 궁극적으로 우상에게 경배하게 한다. 이 '종기'라는 말은 속으로부터 곯아서 밖으로 나타나는 상처를 말한다. 표를 받은 이들은 매매가 자유로와서 사는 것에 대한 문제가 일시적으로는 없었지만, 결국은 속으로부터 썩는 고통을 당한다. 방사능에 오염된 음식들, GMO 등이 생각난다. 체르노빌과 일본의 원전 사건은 이런 일에 경고를 준다. 물론 그 사건들의 피해자들이 표를 받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3절 - 둘째 천사는 대접을 바다에 쏟는데, 바다가 그냥 피가 아니라 죽은 자의 피같이 되었다. 그 후의 전치사 kai는 '그리고' 혹은 '그래서' 등으로 번역이 가능하기 때문에 바다가 검붉은 색으로 변했기 때문에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들이 다 죽었을 수도 있고, 혹은 바다 생물들이 모두 죽어서 검붉게 변했을 수도 있다고도 이해할 수 있다. 8장에서는 바다 1/3이 죽지만 이번 장에서는 모두 죽어서 바다에는 더 이상 생물이 살지 못한다. 지금 상식으로는 이것이 가능하려면 방사능 유출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 같다. 알게 모르게 이제까지 여러번 원전 폐기물을 깊은 바다에 버렸다고 하는데...
4절 - 셋째 천사는 아직도 살아남은 식수의 원천인 강과 물 근원에 쏟아서 피가 되게 만든다. 물이 없는 지구, 더 이상 생명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5-7절 - '물을 차지한 천사'는 문자적으로 '물의 천사'이다. '이제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에서 '거룩하신'의 단어는 앞장 4절 '오직 주만 거룩하시나이다'와 동일한 단어인데, '앞으로도 계실'이라고도 번역되었다. 세상 모든 것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지에 대해 불투명하다. 하지만 오직 주님만이 확실히 과거 현재 미래에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린 이들이며 특히 마지막 때에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형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무고하게 성도들과 선지자들을 죽였기 때문에 벌로 피를 마시게 된다. 그러한 처사와 심판은 의롭고 당연하다.
제단은 항상 제물 그리고 피와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제단은 이렇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다고 증언한다.
8-9절 - 넷째 천사는 대접을 해에 쏟는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운다. 그 뜨거움으로 사람들이 타는데, 아마도 태양 표면의 폭발 운동이 더 강해졌거나 아니면 지구상의 여러 재앙으로 오존층이 얇아져서 우주로부터 들어오는 많은 유해광선이 차단되지 못하는 상황같다. 세상에는 뜨거운 곳이 많겠지만 아리조나 사막에서는 그늘을 잠간 벗어나도 태양빛이 너무 뜨거운 것을 경험했다. 그보다 몇배 몇십배 더한, 걸러지지 않은 직사광선은 많은 것들을 순식간에 태울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고 회개하지 않고 주께 영광을 드리지 않는다. 멸망하는 자는 그대로 그냥 돌이키지 못하고 멸망당한다.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주님 회개할 기회를 찾아도 얻지 못한 에서를 기억합니다. 은혜 시대때 주님의 오래 참으심과 인내하심에 사람들이, 아니 제가 너무 익숙해진 것을 회개합니다. 주님, 이러한 이상을 저도 보기 원합니다.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높이며 주께 영광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