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 '이상한'이란 단어는 '놀라운 marvelous'이라는 뜻이다. 괴상하다는 뜻이 아니라 크고 놀라운 또 하나의 이상이다. 다시 일곱 천사가 있고 일곱 재앙을 가졌는데 그것은 뒤에 나올 일곱 대접이다. 마지막 재앙이며 이것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마치는데, '마치다'는 단어는 '끝나다'는 뜻도 있지만 '완성되다'는 뜻도 있다. 즉 하나님의 진노는 그냥 분풀이로 끝나는 해프닝이 아니라 완성시키는 진노다. 주님의 계획 안에는 은혜와 긍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노도 있다. 그냥 화가 나서 발하는 진노가 아니라 뜻과 목적이 있는 진노다. 악을 심판하시는 진노다.
2절 - 유리 바다가 자주 등장하는데 하나님의 심판으로 생겨난 지구상의 바다는 새하늘과 새땅에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계 21:1) 대신 유리 바다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구절의 유리 바다에는 불이 섞였다. 불은 보통 시험, 심판, 환난 등을 말하는데, 아마도 짐승과 그 우상의 시기 즉 대환난의 시기를 통과한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바닷가에 '짐승으로부터, 그의 우상으로부터, 그 표로부터, 그의 이름의 수로부터 이긴자들이' 서 있고 그들은 하나님의 거문고 (하프)를 가지고 찬양하는데 5장의 24장로들이 거문고를 들고 찬양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3절 - 앞장에서는 십사만 사천의 '새 노래'가 있는데, 15장에는 환난을 통과한 이긴자들이 부르는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른다. 모세의 노래는 구약 출 15:1-18 그리고 신32:1-43에 나오는데 그 내용은 바로의 손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와 삶 가운데 인도하시고 보호하심을 찬양하고, 원수를 심판하신 것을 찬양하는 것이다.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모세의 노래 즉 출애굽과 광야에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심,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에 들어가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노래한다. 마찬가지로 세상죄를 지고가신 어린양은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해결함으로 믿는 자들에게 구속을 허락하시고 삶가운데서 인도하시고 최후 승리를 얻게하시므로 그 두개의 노래는 동일하다. 궁극적으로 구속하시는 어린양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의 '크고 놀라우시도다' 두 단어는 1절과 동일하다. 하나님을 거역한 세상과 원수 마귀에게 행하시는 진노의 심판은 크고 놀라우시다.
'만국의 왕이시여'라고 되어 있는데, 원어에는 '성도들의 왕이시여'라고 되어있다. 즉 성도들의 왕으로서 주님의 길은 의롭고 참되시다. 성도들의 원수와 울분을 갚으셨기 때문이다.
4절 -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에서 '거룩'은 신약에 8번만 쓰인 단어로서 '죄가 없이 깨끗하다' '주의 거룩한 자' '다윗의 긍휼' '거룩한 손' 등으로 쓰였다. 보통 거룩은 '하기오스'라는 단어를 써서 약 219번 나오는데, 여기의 '거룩'은 조금 다른 단어 '호시오스'를 썼다.
주의 의로우신 일은 성도들에게만 위한 것이 아니라 또한 만국을 위한 것이므로 그들이 와서 주께 경배할 것이다.
5절 - '이 일 후에' 다시 하늘을 보는데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렸다. 이 말씀이 좀 헷갈리는데, 구약에서 광야시대 장막은 성전이 지어진 후에는 사라졌다. 그런데 여기는 장막도 있고 성전도 있다. 그런데 이 '장막'이라는 단어는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에서 '거하시매'라는 단어의 명사형이다. 즉 '장막치시는 것'은 '거하시는 것'이고 그 명사형이 '장막'이다. 다시 말해 증거(단수)가 있는데 그 증거의 장막침의 성전이다. 즉 성전은 증거한다. 성전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그의 행하심을 증거한다. 또 후에 일곱 재앙도 증거한다. 오직 하나의 성전은 증거하는 성전이다.
6절 -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들이 동일한 성전으로부터 나오는데 맑고 빛난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 그렇기에 그들로부터 말미암은 일곱 재앙은 의롭고 정결하고 거룩하다.
7절 -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계신 하나님 그 분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일곱 천사들에게 준다.
8절 - 소위 말하는 '파루시아'의 모습이다. 이사야 6장 우시야 왕이 죽던 때 이사야가 경험한 하늘에 있는 하나님 성전의 모습이다. 그 영광과 능력이 가득해서 근접할 수 없는 광경이다. '일곱 재앙이 완성되기까지는 성전 안으로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은 일곱 재앙 후에는 성전에 들어갈 자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일이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하다.
주님의 역사하심은 의로우시고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 역시 우리에게는 찬양의 대상이고 이유입니다. 주님의 모든 행하심은 그 목적이 뚜렷하시고 주님의 백성을 위한 것임을 알고 찬양드립니다.
두 개의 낫, 두 종류의 추수
14절 - 흰 구름위의 인자는 그 모습이 확실한 주님이시다. 그런데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이 있다. 서양 낫은 우리나라 낫보다 크기가 몇배나 커서 두 손을 가지고 온 몸으로 곡식를 벤다. 이러한 큰 크기의 낫이 임진왜란 중 무기로 사용되어서 근접한 왜적의 목을 베는데 큰 효과를 거두었다고도 한다.
15절 -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온다. 이 성전은 하늘의 성전일 것 같다. 한국어 번역에는 '구름 위에 앉은 이'라고 해서 공간적으로 이 다른 천사가 구름보다 밑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영어나 원어의 느낌은 자기보다 높은 곳이 아니라 그냥 '구름 위 on'이다. 그가 큰 음성으로 인자에게 외쳐서 때가 되었으니 곡식을 거두라고 부탁드린다.
16절 - 주님께서 낫을 땅에 휘둘러서 곡식을 추수하신다. 이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라는 말은 원어에는 '추수가 익은 때'이다. 막 4:29에는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는 말씀으로 오늘 이 구절이 이루어짐을 볼 수 있다. 즉 이 '곡식'은 믿는 이들을 뜻하며, 첫 열매인 십사만 사천 외 드디어 믿는 이들 모두가 이 땅에서 거두어짐을 볼 수 있다. 이 후에는 성도들이 이 땅에 남아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데, 18:20절에는 보다 분명하게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라고 기록하며 이미 성도들이 모두 하늘에 있음을 암시한다.
17절 - 그런데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제단'에서 나온다. 그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곡식을 거두는 낫이 아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을 제물을 위한 것이다.
18절 - 다른 천사는 불을 다스리는데 아마도 심판을 뜻하는 것 같다. 그가 예리한 낫 가진 천사에게 큰 음성으로 땅의 포도송이가 익었으니 거두라고 한다. 그런데 이 '익었다'는 단어는 'ἀκμάζω'로 '장성하다'라는 뜻인 반면에, 위의 곡식이 익었다는 단어는 'ξηραίνω'로 '마르다, 수분이 빠지다, 곡식이 익었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곡식이 익으려면 자신의 자아가 모두 빠지고 온전히 알곡만으로 남을 때까지 말라야 한다. 반면 진노의 포도송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의 말씀처럼 그 상태가 이제 완전히 끝을 볼 때까지 장성해서 심판의 낫을 휘둘러야함을 말씀한다.
그런데 계시록에서는 포도나무나 포도주 등이 부정적으로 쓰였다. 사실 주님은 '참 포도나무 (단수)'이고 주님의 뻗어나가심 즉 가지가 우리이며 그럴 때 우리는 열매 (포도알)를 많이 맺는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여기의 포도나무는 복수이고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 외의 다른 포도 나무들이다.
19-20절 - 포도가 거두어지고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져지고 성 밖에서 그 틀을 짜니 포도주가 만들어지는 것 처럼 피가 말 굴레 높이까지 올라와서 1600스타디온에 퍼졌다. 사람들이 죽어서 그 피가 얼마나 흘렸으면 그 높이가 말 굴레에 (아마도 약 1.5미터?) 약 2560km까지 퍼졌을까. 끔찍한 심판이다.
주님, 두 번의 추수가 있음을 봅니다. 인내로 주님을 믿으며 참고 기다려서 하늘의 추수하심에 포함되는 이들이 있는 반면, 하나님을 거역해서 말살당하는 수많은 이들도 봅니다. 역사를 통해 많은 전쟁과 병들 그리고 여러 가지 요인으로 사람들이 죽었지만 정작 사망이 죄의 결과임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경고를 무시하지 않게 하시고, 죄에 대해 좀 더 단호할 수 있도록 주님의 의를 붙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