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 14-15절을 보니 유덕화 안성기 주연의 묵공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전국시대 당시 평화사상을 펼치기 위해 병법을 익혔던 묵가의 제자 중 혁리라는 사람이 비교적 작은 양성을 당시 대국이었던 조나라가 공격을 하자 지혜로 대항하여 물리친 내용이다. 하지만 그 결말은 혁리를 따르던 사람들은 반역죄로 몰려 죽고 혁리는 혼자 고아들을 돌보게 되고 왕위에 연연하던 왕은 결국 반란으로 죽임을 당한다. 허무하게 끝나면서 역사는 한 사람에 의해 바뀌지 않는다는 다소 염세주의적인 결론으로 매듭짓지만, 그것이 또한 현실임도 말하고 있다.
성읍을 구한 혁리도 있지만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 야비하게 술수를 써서 결국 나라의 지경을 무너뜨린 양왕도 있다. 영화로 만들어지긴 했어도 혁리를 기억하는 이들은 드물다. 그리고 기억한다고 그에게 무슨 이익이 있나? 벌써 분토가 되버린지 오래다.
오늘 말씀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평화, 올바른 정치, 명예, 명분, 인생에서의 성공 등 모든 것이 가치있고 좋은 것이지만, ‘나’라는 개인 한 사람, 한 영혼의 가치에 대해 또 다시 집요하게 조명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모든 것들 가운데 서 있는 ‘나’는 과연 어떠한 존재이며 무엇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추구한다고 그것이 이루어지는가?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개인주의적인 면을 띨 수 밖에 없지만 주님 말씀하신대로 ‘천하보다 귀한 목숨 (혹은 영혼, 막 8:36)’ 임을 생각할 때 결국 전도서에서 지향하고 있는 것은 먼저 내 자신이 삶의 가치에 대해 그 기준을 분명히 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주님, 주께서 지혜를 주시면 성읍도 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 결론이 덧없게 된다면 아무런 유익도 없겠지요. 삶에 대한 나의 태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소서. 오늘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수술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 죽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시기와 기회 또한 재앙의 때가 있음을 알고 주 앞에 겸손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