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이라는 말은 모든 것이 뒤바뀐다는 뜻으로 증산도라는 신흥 종교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환단고기를 인용하고 자신들의 경전을 배경으로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들의 글을 읽어보면 나중에는 한국인들이 온 천하를 정복하고 모든 민족 위에 군림하게 된다는 것으로 들린다. 물론 한민족이 강했던 때도 있었지만 역사를 통해 특히 근대에 와서 힘든 일을 많이 당해온 민족으로서 그러한 것에 혹할 수 있다. 마치 2차 대전을 일으켰던 히틀러가 자신은 오스트리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게르만 민족 운운하며 독일은 물론 전 세계를 참상으로 몰았던 것을 떠오르게 한다. 독일 민족도 역사적으로 많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국인이 전 세계를 이끈다는 그림보다는 오히려 박정희가 국민교육헌장에서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할 때다’가 훨씬 나은 것 같다. 왜 기본적인 홍익인간의 개념은 잊는 것일까.. (박정희에 대해서는 감정이 엇갈린다. 아니, 대한민국 모든 대통령들이 그렇다.)
오늘 말씀 21절에서 23절까지는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이 견딜 수 없게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 곧 종이 임금된 것과 미련한 자가 음식으로 배부른 것과 / 미움 받는 여자가 시집 간 것과 여종이 주모를 이은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는데 생각해 보면 그리 나쁜 것 같지 않다. 종도 임금이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회, 미련한 사람도 배곪지 않고, 또 외모적으로 덜 매력적인 여자도 시집을 갈 수 있고, 여종 역시 열심히 일해서 주인의 자리를 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 희망이 넘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이미 현시대를 사는 많은 젊은이들은 그것을 깨닫고 있다. 이제는 아무리 대학을 나와도 걸맞는 취업이 보장되지 않고 오히려 빚을 지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게 되며 특히 전공을 살려서 일하는 것이 쉽지 않고 평생 서너번 전혀 다른 생업에 종사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나와 있다. 어쩌면 희망이 넘치는 사회는 누구나 소위 말하는 상위 1%에 오를 수 있다는 거짓된 꿈을 주는 것 보다는 삶 자체에서 의미와 기쁨을 발견하고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것이겠다. 물론 상위 1%에 오르는 이들도 분명 있지만 모두가 위를 향해서만 가려니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물론 ‘여종이 주모를 잇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종이 임금되기 위해 거짓을 꾸며대고 결국은 임금을 죽인다. 질서가 파괴된다. 미련한 자가 자기 배만 채운다. 얼굴은 반반하지만 헐뜯는 입을 가진 여자가 시집을 가서 자신은 물론 한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타락시킨다. 주모의 자리를 얻기 위해 여종은 권모술수 써서 그 자리를 탈취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성경은 진취적인 기상이나 열심히 일한 대가로 신분 상승을 말하는 것 같이 들리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말씀도 많은데, 자족하라고 권유하는 말씀은 물론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6)’는 말씀도 있다. 그 때가 어쩌면 이 세상에서의 때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주님, 진정한 개벽은 주의 재림 때 있을줄 믿습니다. 의로우신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실 것이고, 주님께서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던 것(히 5:8) 같이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고난을 통과함으로 순종함에 이르는 모든 신실한 주의 종들이 그 날 높임 받을 것을 믿습니다. 오늘 고난을 통과하는 이들에게 힘이 되시고 믿음을 지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