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기를 볼 때는 성심을 다해 돌보지만 아빠에게 아기를 보라고 부탁하면 우스갯 소리로 그냥 ‘보기’만 한다고 한다.  아기를 본다는 것은 돌본다는 말이지만 아빠들에게는 그게 잘 입력이 되지 않는다.  계시록 1:3에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라고 말씀하는데, 읽고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기록한 것을 지키기까지 해야 복이 있다.

 

어제 밤 페이스북에서 프란시스 챈 목사의 2분 설교를 들었다.  짥막하지만 매우 강력한 메시지였는데,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연구하고 외우기는 하지만 그 말씀을 행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마치 아빠가 딸에게 방을 치우라고 할 때 딸이 ‘아빠가 방을 치우라고 한 것 모두 외웠어요, 헬라어로도요’ 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재미있는 예를 들었다.  제자 훈련 및 말씀 연구, 그리고 전도 훈련 등 교회 안에는 여러 프로그램이 있지만 정작 그 프로그램 진도를 나가고 마쳐서 수료증을 받는 것이 중요하지, 그대로 따라 사는 것, 삶 속에서 실행하여 열매 맺는 것까지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어떤 경우 기도에 대한 프로그램을 하는데 정작 기도는 거의 하지 않는다...

 

오늘 말씀 27:23’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는 말씀은 삶을 경영하는데 있어서 부지런함에 대한 권고이지만, 다락방 훈련 때에는 목회자들의 목회에 대한 열정과 더불어, 다락방장들은 먼저 자신 가족의 영적 상황에 대해 항상 살피며 마음을 두고, 나아가서 다락방원들의 영적 상태를 자주 점검하고 위해서 기도하라는 권면의 말씀으로 인용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씀을 지키는 것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을 이해하고 배우고 외우기는 쉬워도 그것을 지키며 살기는 어렵다.

 

28:9절에는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고 말씀하는데 ‘귀를 돌려’ 라는 부분이 생명의 삶 해설에서는 ‘적극적인 순종’이라고 말한다.  즉 말씀을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돌려서, 정신을 차리고, 듣고 순종하려는 마음과 목적을 가지고 듣는 것이 없다면 기도라는 기본적인 종교 행위도 가증하다는 것이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되지 않고 다른 것들이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매 순간 귀를 돌릴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삶의 목적과 그 과정이 주님과의 동행이라면 그 삶 자체가 기도가 되고 말씀을 사는 것이 될 것이다.

 

주님, 들을 귀 있는 자 되게 하소서.  적극적인 순종을 명하셨으니 그 명령에 순종해야 함을 압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할 때 더 이상 무언가 달라는 혹은 지켜 달라는 등의 기도가 무의미함을 깨닫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약함과 용기없음에서 눈을 돌려 모든 것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봅니다.  오늘 주의 몸된 교회를 복되게 하시고 귀를 돌려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을 일으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