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은 총체적으로 타락했지만 놀라운 것은 5절 말씀과 같이 ‘그 가운데 계시는 여호와’ 즉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아직도 계신다는 점이다.  방백과 재판장, 선지자들과 제사장들 모두가 타락했지만 아직도 여호와께서는 그 가운데 계신다.  ‘어떻게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계시는데도 그들이 타락했을까?’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지만, 그 보다는 ‘그들이 타락했는데도 어떻게 여호와께서 함께 하실까?’ 라는 질문이 더 맞는 것 같다.

 

마태복음 1:23에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말씀하며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되셨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주님께서 오셨던 때는 그의 백성들이 근신함으로 간절히 메시야를 기다렸던 때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롬 5:8)’였다.  세상이 하나님을 떠나 완전 타락했고 더우기 그의 백성들에게 오셨지만 그들 조차 그를 영접하지 않았던 때 (요 1:11), 400년 동안 말씀이 없어서 종교의 모습은 있지만 오늘 말씀처럼 총체적인 타락이 있던 때 바로 임마누엘 하셨다.

 

비신자들은 하나님을 증명하라고 요구하지만 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다시 육신으로 오셔도 계속 같은 요구를 할 것이다.  신자들 가운데 타락이 있을 때, ‘어떻게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들이 이 모양이 되었을까?’ 라는 질문 보다도 ‘이런 형편없는 이들 가운데 어떻게 아직도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 또 매일 공의를 베풀어 주실까?’ 라는 질문을 가질 때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놀란다.

 

구약 경륜과는 다르게 이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성령으로 임하시고 임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신다.  그런데도 그 타락했던 때와 같이 감동이 없다.  기적이다…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가장 첫번째 임무는 복음 전파도 아니고 구제도 아니고 예배 참석도 아니고,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께 관심을 가지고 그와 교제하며 그 임마누엘에 감동하는 것이다.

 

주님, 주께서 내 영 안에 계시지만 저는 얼마나 주님께 관심을 두지 않는지요…  목숨이 온 세상보다 귀하다면 주님은 내 목숨보다 귀하심을 압니다.  내가 무언가를 부지런히 행하고 또 순종하며 이루는 것도 중요하고 아름답겠지만,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저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심을 봅니다.  죄송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얘기하며,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주님의 내주하심을 기뻐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