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보리 채플 척스미스 목사님이 한국에 말씀을 전하러 가셨을 때 소개가 끝나자마자 강대상으로 달려 나갔다고 한다.  후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 너무도 감사해서 달려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어제 말씀 마지막에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자신을 비롯해 동역하는 주의 종들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 그리고 영광임을 말했다.  그리고 오늘 말씀 1절에 ‘이러므로’ 라고 시작하며,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너무도 사랑스럽고 보고 싶기 때문에 ‘참다 못하여’ 디모데를 보냈다고 한다.  요즘이야 여행이 쉬운 일이지만 고대에는 고생길이었다.

 

‘참다 못하여’가 다시 5절에 나오는데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성장하고 환난을 이길 수 있기를 갈망했다.  6절에서 그의 마음을 다시 한번 드러내는데,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라며 그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표현한다.  (원어에는 ‘간절히’라는 단어가 한번 등장 즉 ‘우리가 그렇듯이’)

 

성도들은 환난 가운데 그리스도, 특히 주님의 강림(13절)을 소망하며 인내해야 한다.  이 ‘인내’는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세상의 유혹과 환난에 대한 인내이며 1장에서 ‘후포모네스’ 라는 말을 썼는데, 3장에서는 비슷하지만 다른 단어로 ‘스테곤테스’라는 말을 썼다.  이 말은 ‘덮다, 지키다, 침묵으로 가리다, 비밀을 지키다, 숨기다, 참다’ 등의 뜻으로 쓰이는데, 재미있는 것은 고전 13장 사랑장 7절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라는 구절에도 이 단어가 쓰였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고 지켜주고 참아내지만, 참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랑의 마음이 불일듯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불일듯 하는 사랑을 ‘간절히’ 라는 말을 써서 표현했는데 이 단어는 ‘에피포떼오’라는 단어로 ‘기대하다, 갈망하다, 사랑으로 추구하다’ 라는 뜻은 물론 ‘정욕을 품다’ 혹은 '시기하다' 라는 뜻도 포함한다.  신약에서는 약 9번 나오는데 대부분 ‘갈망하다’의 뜻으로 쓰였지만 야고보서 4:5에서는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즉 ‘시기하다’의 뜻으로 쓰인 것 처럼 매우 강한 간절함의 표현이다.

 

살다보면 참을 일도 있고 참지 못하는 일도 있다.  어떤 이들은 우스갯소리로 불의에 대해서는 잘 참는다고 하는데 정의든 불의든 믿음의 눈으로 지혜롭게 판단해서 참을 수 있을 때는 참아야 하겠지만, 성도들의 사랑에 대해서는 결코 참을 수 없다.  요일 3:17에는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라고 말씀하는데, 형제가 궁핍함을 보면서도 잘 참고 인내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 것임을 말씀한다.  어떤 이들은 교회에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나오는 것 처럼 보인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

 

이러한 성도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사랑이 우리를 구원한다.  우리의 구원을 증명한다.  하나님도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참지 않으시고 독생하신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주님, 생각할 때 마다 감사의 눈물이 나오는 아버지의 독생하신 아들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고, 그 사랑을 받은 우리도 참을 수 없습니다.  마음 깊이 사랑하며 용서하며 넘치게 하소서.  우리가 사랑할 때 세상은 우리가 제자임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음을 기억합니다.  참을 수 없는 이 사랑이 오늘 내 마음 속에, 우리 가정 속에, 믿음의 권속 안에 충만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