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씀에 믿음 사랑 소망은 그 의미가 바로 행함 고난 그리고 인내임을 배웠다. 오늘 말씀 역시 소망 기쁨 자랑의 면류관 영광 (19-20절) 등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분명한 목적이지만 동시에 고난 능욕 수고 애씀 밤낮으로 일함 등 어려움도 공존함을 분명히 한다.
그러고보니 결국 목적의식이 중요하다. 뚜렷한 목적이 있으면 과정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많은 부정적인 요소들과 시험과 유혹 등은 상대적으로 나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없다. 목적이 영혼 구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것 (4절)에 있는데 누가 좀 더 칭찬을 듣거나 혹은 좀 더 대우를 받거나 아니면 비상식적으로 욕을 먹거나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는 경우 등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과 실루아 그리고 디모데를 비롯, 이끄는 위치에 있는 형제들은 목적을 위해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않는 (5절) 것은 물론 당연히 쓸 수 있는 자신의 권리를 다 쓰지 않는다 (7절). 절제의 미덕이다. 딤전 5:18 에서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는 말씀처럼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먹고 살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조차 내려놓고 그 누구에게도 재정적으로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수고한 바울 그리고 함께한 형제들은 ‘거져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주의 말씀을 몸으로 살아냈다.
이러한 삶의 본을 보일 때 말씀에 권위가 나타나고, 성도들은 그들을 통해 선포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게 된다 (13절). 옥한음 목사님의 절규하는 설교는 이 땅의 목회자들이 얼마나 권위와 대우받는 것은 갈망하지만 그 권위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본이 되지 못하는지 피끓는 외침으로,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 아닌가… 믿는 자들에게 이것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다.
오직 성도들로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 그리고 영광 삼는 주의 종들이 필요하다.
주님, 이러한 귀한 주의 종들이 많이 있는 줄 믿습니다.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대우지만 복음을 위해 철저히 내려놓고 오히려 주님과 같이 몸으로 힘써 일하고 섬기며 본을 보이는 주의 종들 특히 자비량 선교사들의 삶 속에 주께서 무한한 공급이 되시고 저 역시 주님만이 저의 모든 공급의 원천이심을 잊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