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절에는 ‘내가 나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거니와 너희가 내게 묻기를 용납하지 아니하리라’ 라고 했는데, 히브리 원어에는 ‘내가 살아 있으니 (살아 있는 한) 내가 물음을 받겠느냐? (혹은 의뢰를 받겠느냐?)’ 로 되어 있다.  즉 ‘목숨’이라는 단어나 ‘맹세’라는 단어는 없다.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하시기에 인간이나 피조물 처럼 ‘목숨’에 있지 않다.  또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시는 구절은 구약에 몇 번 나오지만 오늘 구절은 의문문으로 되어 있어서 부정적으로 이해하며 해석하는 것 같다.  5절 6절에도 맹세가 나오는데 원어에는 없는 말이다.  (개역역은 왜 이렇게 ‘맹세’를 좋아하나?)

 

재미있는 것은 바로 다음 구절 4절인데, 원어로 보니 매우 시적으로 들린다.  발음이 대강 이렇게 된다.  ‘하티스포트 오탐 하티스포우트 벤 아담 에트 토우아보트 아보우탐 호우디엠’  성경 중에 제일 처음으로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욥기는 사실 시가서인데 시같이 들리지 않는 이유가 히브리어 시는 영어 시 같은 라임이 없어서 그냥 들으면 잘 모른다고 한다.  히브리 시가서가 시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음율이 있고 반복이 있어서 이다.

 

그래서 4절은 반복이 있고 음율이 있는 듯 시적으로 들리는데, 앞 절 3절의 내용이 ‘내가 도무지 너희 말을 듣지 않겠다 그리고 너희도 나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시는 것 같지만 4절에서의 느낌은 ‘나의 말을 들어주렴’ 이라고 하시는 것 같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장로 몇 명의 나아옴에 대해 순전하지 못함을 말씀하셨고, 그들의 의뢰는 듣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버리거나 내치시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음을 상기해 주시기 때문

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이 아침에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이 아침에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었다’  사망과 어둠에서 생명과 빛으로 인도해 내신 주님께서 오늘 이 아침에도 이 더운 날씨 때문에 정신 없는 나를 조금 더 인도해 내신다.

 

주님,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저에게 기쁨이요 위안입니다.  주의 기준에 미치지 못함에 대한 죄송함과 답답함은 있지만, 주께서 나의 하나님 되시고, 살아 계셔서 이 아침에도 제게 말씀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어둠과 사망에서 더 건져 내시고, 더욱 빛 비춰 주시고, 생명이 풍성하게 하소서.  주께서 맡기신 것에 충성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채우소서. 살아계신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