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어제 말씀에 대한 해설과 덧붙임이다.  ‘생명의 삶’ 큐티 제목은 ‘비록 손해가 될지라도 언약을 지키십시오’ 인데, 아마도 시드기야의 입장에서는 바벨론의 속국이 되는 것 보다 오래도록 애증의 역사를 함께 해왔지만 그래도 바벨론에 비해 별 참견을 하지 않는 애굽에 의지하는 것이 덜 손해 보는 쪽이라 생각해서 배반했기에 그런 제목을 지었나보다.  당장 자신의 위치가 흔들리거나 수입이 끊길 것이 예상되면 사람은 여러모로 궁리를 하게 되어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야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훗날을 준비하겠지만 믿는 사람들은 손해가 될 것 처럼 보이더라도 언약을 상기하는 것이 신자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취하는 태도다.  아니, ‘비록 손해가 될지라도 언약을 지키’는 태도를 취해야 맞다. 

 

전 11:1에는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말씀하는데 마치 요즘의 주식 투자를 연상케 하는 구절이다.  주식 투자는 투기 형태로 하게 되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한다.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서…)  그래서 투자하고 난 후 잊어버리고 비교적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비로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수익을 얻는 목적을 가진 주식 투자에 비해,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는 것은 아예 버리는 것이다.  무언가 나중에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음식을 물에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물 위에 던져 버리는 것이다. 

 

신자들의 선행에는 이런 면이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때 나중에 더 큰 것으로 받으려 하는 의도가 있다면 뇌물이요 도박이지만, 나에게 돌려줄 수 없는 이들에게 베푸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같다.  돌고 돌아 나중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더 큰 도움을 얻는 은혜를 누릴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이 없더라도 그렇게 도움의 손길이 되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감사한 것 아닌가..  계산에 밝은 나는 손해나는 일을 하고 싶지 않고,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당황하거나 화가 나지만, 가끔 기꺼이 도움을 드리는 것은 (물질적으로만이 아닌) 그 자체로 나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일이다. 

 

갈라디아서 5:22-23에는 성령의 열매를 열거하면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말씀하는데, 이 모든 열매는 물질적인 이익이 아니라 눈에는 언뜻 보이지 않는 삶의 모습과 인격에 관한 것들이다.  특히 마지막 ‘절제’는 많은 때 손해를 요구한다.   나쁜 것에 대해서는 물론 절제가 필요하지만, 오히려 좋아 보이는 것 즉 내가 조금 더 시간과 정열을 투자하면 더 돈을 벌 수도 있고 더 좋은 학점을 얻을 수도 있고 더 빨리 승진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그러한 것을 포기할 수 있다면 성령의 열매가 드러나는 것이 된다.

 

열매가 반드시 성공과 이익을 의미하진 않는다.  한 사람의 새신자라는 열매를 얻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손해를 경험하는 주의 신실한 종들이 있다.  이런 이들은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덜 좋은 것을 포기한 이들이다.  지금 내가 남보다 잘살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포기하고 손해 봤던 많은 것들의 결과라면 나의 보물은 하늘에 쌓아둔 것이다.

 

주님, 과거 욕심에 눈 어두워 실패를 경험한 적도 있고 또 게을러서 비교적 부유하지 못한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또 의미 있는 것에 돈을 쓴 것 때문에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보았던 때도 있습니다.  주님의 높으신 기준으로는 저는 매우 이기적이지만 그래도 저의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위해 손해 보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던 때가 있음을 기억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주님께서는 저를 항상 귀히 여기시고 더 좋은 것을 얻기 원하셨네요.  우리 믿음의 형제들이 세상에서 물질적인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 하거나 정체성을 잃지 않게 도와주시고 오늘 주님을 선택하게 하소서.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선택하셨음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