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에 하나님은 노아, 다니엘, 욥을 언급하시며 심판 때에 이러한 자들도 그들의 의로 자신들만 구원얻게 됨을 말씀하신다.  그들의 의의 어떠함이 다른 이들에게 까지 미쳐 그들을 구원하는 공의가 될 수 없고 오직 자신의 의는 자신만을 구원할 수 있음을 말씀한다.  재미있는 것은 구약의 다른 위대한 인물 즉 요셉이나 다윗 혹은 모세 등을 언급하지 않으시고 노아, 다니엘, 욥 이 셋을 언급하신다.

 

해석을 보니 노아는 타락한 세상에서 의로움을 지켰고, 다니엘은 우상을 숭배하라는 위협을 받았지만 뜻을 정해 하나님만 섬겼고, 욥은 극심한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 보면 이러한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것인가 알게 된다.  비를 한번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항상 보며 지나 다니는 곳에서 (산에서 지은 것이 아님) 묵묵히 거대한 방주를 평생동안 지었던 노아나, 자신의 목숨에 당장 위협이 들어오는 여러 상황에 놓였을 때 믿음을 지켰던 다니엘이나, 더우기 자신의 잘못의 결과로서가 아닌 고난과 악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끝까지 인정했던 욥의 어떠함은 결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이 단지 얄팍하게 예수님이 주라고 말하기만 하는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생각해 보니 주님께서도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다 (마 5:20).  그래서 믿음은 신비롭다.

 

이러한 높은 구원의 기준과 거기에 따른 심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는 것은 살아 남아 끌려오는 아이들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모두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고 자녀들 중에서는 살아남게 한 이들이 있음을 본다.  그런데 이 자녀들이 노아나 다니엘 혹은 욥과 같은 의로운 이들이라서 살아난 것이 아니라 하는 짓들을 보니 그 부모 세대와 똑같다.  그럼에도 그들이 살아 나온 것을 보고 먼저 끌려온 사람들은 위로를 받는다.  아… 하나님께서는 이 되먹지 못한 아이들을 살려 주셨구나, 그래도 이스라엘이 끝이 아니로구나.. 하며 위로를 얻는다.

 

주님, 주 앞에서 저는 의로운 것이 하나도 없음을 다시 고백합니다.  아니, 얼마나 악하고 약한지요.  노아 같이 평생을 통한 간증의 삶도 없고, 다니엘의 목숨을 걸고 주께 충성하며 매 시간 기도하는 모습도 없으며,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불평이 나오는 모습이 욥과는 너무 멉니다.  이러한 저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  그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이제 주님의 의를 붙잡고 주를 닮아가게 하소서.  오늘 주를 붙잡고 주님의 어떠함을 닮아가는 하루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