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다. 회복도 그렇고, 선교 역시 하나님의 일이며, 개혁 역시 하나님께서 하신다. 지도자들의 반성도 필요하고 사회 전반의 분위기나 성숙한 의식 수준 등도 선제 조건이기는 하겠지만 그러한 것들 때문에 개혁이 이루어지진 않는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신실한 백성들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셔야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가 답이다. 기도하는 자에게 말씀이 임한다. 에스겔 역시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계시를 받는다.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는 기도는 정말이지 쓸데없는 일이다. 그런데 신앙이 있어도 하나님이 주권적이고 절대적이면 왜 기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나오는데,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 (대하 16:9)'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사역을 그의 신실한 종들에게 위임하시기를 기뻐하시고, 그래서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쓰신다 (고전 1:21). 하나님께서 다 하실 수 있지만 황송하게도 우리를 쓰신다. 그래서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는 것 보다는 '내 이름 안에서 구하는 것'이고 그러면 무엇이든 주님께서 시행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요 14장).
오늘 말씀 중에 안타까운 것은 23절에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 가운데에서부터 올라가 성읍 동쪽 산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평강의 도시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고 이스라엘의 중심, 아니 이 땅의 중심이었지만 거기서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 동쪽 감람산으로 옮기셨다. 이것을 사람들이 봤다면 황당했을 것이다. 절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아예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으시고 아직도 곁에 계신다. 아직도 감찰하시고 사랑많은 부모의 눈으로 예루살렘을 보시는 듯 하다.
기독교가 종교 집단으로 타락할 때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찾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고 예배를 말하지만 화려한 무대와 듣기 좋은 음악으로 인위적인 임재를 지양하고 있진 않는가? 오히려 회개의 영이 필요하다.
주님, 개혁은 기독교도 필요하지만 정작 내 안에서 더 필요한 것을 압니다. 제가 먼저 변화해야 하겠습니다. 수도 없이 결단했지만 실패했던 경험을 기억합니다. 전적으로 주님께 속한 것임을 다시 한번 겸손히 인정합니다. 오늘 주님의 주권 앞에 무릎꿇고 성령으로 이미 주신 새 마음과 새 영으로 돌이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