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관점에서 개인적인 목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로 끝나지만, 영적 지도자로서 성경을 잘못 해석하면 주님의 몸된 교회에 큰 해를 입힐 수 있다.  오늘 말씀은 앗술의 아들 야아사냐와 브나야의 아들 블라야가 백성들의 고관으로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해 잘못 해석함에 대한 심판을 말씀한다.  에스겔이 예언할 때 아예 블라야는 죽는다.

 

정치적 입장에서 소위 보수 진보의 논리로 보자면 이 둘은 보수쪽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예언을 하는 에스겔은 진보로 비춰졌을 것 같다.  하지만 특히 남북으로 갈린 상황에 처한 한국인의 입장에서 얼마나 보수와 진보가 제대로 이해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나님 앞에서는 보수도 진보도 없다.  하나님은 진정한 의미로 가장 진보적이시면서 동시에 또한 가장 보수적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경우에 따라 상반된 말씀을 하셨다.  어떨 때는 성읍이 에워쌈을 당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받을 것을 말씀하셨지만 오늘 말씀 같은 경우에는 완전히 심판 받을 것을 말씀하신다.  야아사냐와 블라야가 백성의 고관의 입장으로서 아마도 백성들의 동요를 걱정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르게 해석함으로 정치적 안정을 꾀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해석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후에 나타나는 결과로 분명해진다.

 

성경을 읽다가 혹은 설교를 듣다가 가끔 드는 의문점은 과연 동일한 구절의 말씀이 다르게, 그것도 완전히 다르게 해석 되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예를 들어 주님께서는 ‘누룩’에 대해 계속 부정적으로 말씀하셨는데 마 13:33 그리고 눅 13:21의 ‘여자가 … 부풀게 한 누룩’에서 이 누룩이 천국의 ‘확장’으로 해석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동시에 성경 해석은 과연 한쪽으로만 가능한가 하는 문제도 나에게는 걱정거리였다.  그래서 결국은 어떤 면에서는 로고스 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에 대한 해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해는 마시길..)

 

과연 성경 해석은 어떻게 해야 하나?  신학교에서는 보통 문맥을 잘 살펴보는 것과 당시 상황에 대해 고려하는 것 등이 중요한 것으로 가르치는데, 신약 여러 곳에서 구약 말씀을 인용한 것 보면 도무지 엉뚱한 문맥을 연결시킨 것도 꽤 많다. 

 

그런데 오늘 말씀으로 되돌아가 보니 조금 보이는 듯 하다.  먼저 에스겔의 경우 ‘주의 영’이 함께 하심을 분명히 한다.  말씀은 성령님의 도움없이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벧후 1:20)’ 그렇게 되면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3:16)’ 고 베드로는 경고한다. 

 

두 번째는 오늘 말씀 2절에서 ‘불의를 품고 악한 죄를 꾸미는’ 사람은 하나님 뜻에 어긋나게 성경을 해석함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똑똑해서 말씀 구절을 잘 안다 해도 그 품은 마음에 불의가 있고 악한 죄를 꾸미고 있다면 결국 성경은 자신의 유익을 위한 수단과 도구가 되어 버릴 뿐 말씀 자체에 순종함으로 변화를 받지는 못한다. 

 

마지막으로 결국은 그 결과로 알 수 있다.  어쩌면 답답한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구약 시대에 알지 못하는 많은 예언자들이 예언을 했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로 정리가 된 것은 그들의 예언이 결과적으로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을 사는 우리에게는 이런 면 역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오늘 해설에서는 지도자의 영적 무지와 교만에 대해 말하는데, 아마도 그것이 성경 말씀에 대한 잘못된 해석의 핵심적인 이유일 것 같다.  벧후 3:16절에도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억지로 풀다가’ 라고 말씀한다.  영적으로 무지한 무식한 자들과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온전히 굳세게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이들이 기다리지 못해 안달함으로 억지로 성경을 풀다가 결국 멸망한다.  오늘 나에게 있어 답답함에 대해 기다림이 필요하다.

 

주님,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하지만 너무 깊고 높아서 나의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기다림이 답답할 때도 있고 그래서 다른 곳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거나 다른 것을 함으로 시간을 때우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임박한 환난에 대해서도 정말 바로 내 앞에 놓이지 않은 이상 그러한 말씀을 일부러 잊고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라는 입장을 취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 주님의 영이 필요합니다.  오늘도 오늘 누릴 분량의 성령을 주시옵소서.  성령은 하나님이시지만, 생명의 말씀이며 또 나를 채우시는 분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