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읽다보니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가 생각난다.  각자 5가지 주요 내용이 있지만,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이냐 아니면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이냐 하는 부분에서 입장 차이가 있다.  과연 어느 것이 맞을까?  둘 다 맞다.  그리고 둘 다 온전하지 못하다.  무엇이든 ‘~주의’ 혹은 ‘~ism’이라는 것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분석할 수 없다.  하나님은 논리가 아니라 창조주이시고 생명이시다.  말씀 그대로 받아야 한다.

 

성경을 보면 분명히 칼빈주의에 해당하는 말씀도 있고 반대로 알미니안주의적인 내용도 있다.  오늘 말씀도 지존이시며 절대적인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일을 행하시지만, 동시에 그 일을 에스겔에게 위임하시고 또 의인이든 악인이든 하나님의 경고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과 태도에 따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내용은 20절 말씀인데,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고 하신다.  그것을 오늘에 적용하면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이 평생 충성되게 살아도 나중에 하나님 말씀 따라 살지 못하고 삶을 마치면 지옥갈 수 있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 들린다.  칼빈주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이미 구원받았음으로 삶의 후반부에 악을 행하거나 하나님을 떠나도 천국갈 수 있다라고 할 것이고, 알미니안주의 입장이라면 그 반대의 입장을 위할 것이다.  아니면 또 다른 해석을 할 수도 있다.

 

히브리서 6:4-6에는 소위 난해 구절이 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 말씀에 대해 꽤 오래 고민을 했지만 결국 ‘배교’에 대한 문제다.  히브리서 전체적 내용이 그렇기 때문이다.  구약 모든 말씀의 실제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면서 이제 그림자였던 구약의 참된 실제가 왔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혹은 종교적 압박으로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겠느냐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제시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배교의 죄는 씻지 못할 것을 분명히 한다.  즉 이것은 신실하게 믿음으로 살다가 어느 한 순간 실수로 죄를 지은 문제가 아니다.  완전히 주님을 배반하고 떠난 것을 의미한다.

 

전에 나눴던 큐티 내용을 다시 한번 인용한다.

“한번 은혜로 구원 얻으면 결코 구원을 빼앗길 수 없지만, 그것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관점이고, 그래서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것이지만, 앞을 알 수 없는 인간의 관점으로는 구원을 잃을 수도 있음을 본다.  그래서 배교 하는 이들도 본다.  /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이들을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입장이요 시야다.  창세전에 택함 받고 구원받는 일 역시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나의 확신'은 내 믿음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함에 있다.  나 역시 베드로 처럼 주님을 부인할 수도 있고, 배교할 수도 있는 믿지 못할 연약한 존재지만, 그렇기에 온전히 구원하시는 주님을 의지할 뿐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분명 구원 받았지만, 내가 절대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지 못한다.  내 연약한 육신과 유약한 정신은 언제고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다.  그래서 주의 은혜가 필요하고 이를 구하며 나아간다.  과연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내가 한 것도 알고보면 주께서 주신 은혜다.

 

주님, 과연 그 누구가 자신의 힘과 의지와 능력으로 주를 믿었겠습니까?  분명 그 배후에는 창세전에 택하신 주의 손길이 있었고, 이제껏 믿음 잃지 않게 하신 것도 주의 은혜 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주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도 있음을 압니다.  주의 말씀 따라 주와 동행하며 영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성령을 한 없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