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계시록 10장과 흡사하다.  하나님의 말씀인 두루마리를 먹어 버렸더니 입에는 달고 배에는 쓰다.  하나님 말씀은 만지작 거리는 것이 아니라 내 입을 열어 잘기 잘기 부숴 씹어 먹는 것이요, 입에는 달지만 소화시키는 것은 간단하지가 않다.  그 말씀의 깊이와 오묘함과 아름다운 생명 그리고 진리 등을 경험하며 내 입에는 달다고 느끼지만, 말씀 자체를 소화하는 것은 삶 속에서 나와 말씀이 하나되는 과정이기에 내 배에는 쓰다.

 

그런데 오늘 말씀 같은 사건이 단지 에스겔이나 사도 요한에 국한된 특별한 경험이라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요 6:57)’고 말씀하시며, 구원의 길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먹고, 더우기 씹어 먹는 것임을 분명히 하신다.

 

아침에 큐티를 하며 많은 경우 말씀을 눈으로 읽고 머리로 생각해서 교훈을 얻어내려고 하는데, 그러한 방법은 나에게 생명을 충분히 주지 못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것은 두루마리를 단지 만지작 거리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담이 선악지식나무 열매를 먹음으로 죽었던 것 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먹음으로 생명을 얻는다.

 

왠지 모르지만 아침에는 상쾌함과 산뜻함 보다는 사망의 느낌이 더 강하다.  일어나기 싫고 전 날의 실수에 대한 기억들이 나를 짖누른다.  그래서 큐티를 통해 힘을 좀 얻고 위로를 얻기를 기대하지만, 어떨 때는 본문 내용이 입에 달지도 않은 내용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한번 깨닫는 것은 큐티는 단지 ‘조용한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큐티는 주님 앞에서 세상과 나의 떠드는 소리를 멈추는 quiet time이지만, 동시에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하는 quality time이고, 나의 삶을 아뢰는 question time이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quest time이고, 나의 어떠함을 끝내는 quitting time, 또한 나를 살리는 quickening time이다.

 

특히 아침에 하는 큐티는 나를, 나의 영을 살려야 한다.  나의 영을 살리지 못하면 나의 자아가 살아나고, 나의 생각대로 하루를 보내게 된다.  두루마리를 먹지 못하고 단지 만지작 거리다가 결국 말씀과 관계없는 삶을 산다.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려야 한다.  씹어 먹어야 한다.  오늘 나를 살리는 말씀을 먹는다.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올리시는데 내가 내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찬송할지어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처소로부터 나오는 도다!’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가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시키시더라!’

 

주여, 에스겔이 경험한 것을 저도 경험하게 하소서!  때에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올리시는데!  아멘!  나를 들어 올리소서!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올리십니다!  내가 더 이상 사망에 있지 않고 주의 권능으로 하늘에 오릅니다!  그 힘으로 주를 찬송합니다!  주의 영광을 봅니다!  이 아침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남으로 생명을 얻습니다!  할렐루야!  나의 근심은 세상의 것이 아니고, 주께서 거룩한 의분으로 나를 채우십니다!  세상이 악한 것에 화를 냅니다.  주의 뜻이 아직 이 땅에 이루지 않은 것에 화를 냅니다!  나를 포함한 주의 백성들이 졸고 있는 것에 화를 냅니다.  나의 연약함과 심히 죄됨에 화를 냅니다.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화가 납니다.  오직 주의 영이 나를 사로잡으시고 나를 들어 올리시고 주의 백성들을 강하게 하시고 그 입에 말씀을 두소서.  나의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주의 말씀을 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