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다. 경찰들이 법 집행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가 꽤 있지만 경찰 없는 도로를 상상할 수 없다. 법의 목적이 질서 유지와 정의 실현이라고는 하는데, 현실에서 정말 그런 결과를 낳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법은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기준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불린다 (위키). 그래서 헛점이 많을 수 밖에 없고 법을 악이용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법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여러 가지 경우에 대해 제한을 두는 것이고 옭아매는 것이다.
그런 면에는 모세의 율법도 큰 차이가 없다. 아니 오히려 사람을 완전히 묶어 놓는다. 세상 법 보다 더한 것 같다. 세상 법은 서로간의 관계에서 최소한의 기본적인 기준에 그치지만, 율법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드러내어 그 기준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율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 보다는 우리가 지킬 수 없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주신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한 기준을 만족 시키는 분은 그리스도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온전한 제물이 되신다.
미국 어느 초등학교에서 넓은 운동장을 아이들이 더 넓게 쓰도록 하기 위해 철조망을 없애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모두들 좋게 여겨 철조망을 없애자 아이들이 노는 시간에 자꾸 운동장 중앙으로 모이는 현상이 벌어졌다. 넓은 운동장이 오히려 좁아진 것이다. 철조망은 아이들에게 억압이나 제한이 아니라 보호벽이었다.
하나님의 법이 이와 같아서 더러움과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신다. 옭아매는 것 같이 느껴도 실제로는 우리를 살리시고 자유케 하신다. 그리스도라는 우주보다 넓은 지경 안으로 들어 올 때 그 안에 '묶인 무한한 자유로움'을 계획해 놓으셨다. 타락한 인성은 여러 모습의 음행에 목말라도 하나님의 법은 금한다. 이제 한국에서는 간통죄도 폐기됐다지만, 주님은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 자체가 간음이요 죄임을 말씀하신다.
이러한 말씀이 심리적으로 압박을 주고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은 죄일 수 밖에 없다는 무기력감을 줄 수 있지만, 그러한 부정적인 느낌과 근심은 오히려 우리를 온전하신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인도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후 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