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말씀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과연 지혜를 구한다고 얻어질 수 있는가이다. 지혜가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처럼 얼마나 벌었는지, 아이큐 처럼 측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다고 해서 내가 정말 지혜를 얻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일까? 5일간 기도했더니 내 지혜 수치가 2% 올라갈 수 있는 것일까? 야고보서에서는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주신다고 하셨는데, 정말 구한다고 주셨을까? 나를 보니 별로 주시지 않으신 것 같다. 내가 종종 일을 처리하는 면이나 몇몇 부딛히는 상황 속에서 나의 모습을 보면 정말 바보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은 지혜에 대해 내가 아직도 오해하고 있음을 다시 알게 된다.
다시 정의해보지만 지혜는 똑똑함도 아니고 일처리 능력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꿋꿋이 말씀따라 순종하는, 보기에는 좀 답답해 보이고 우둔해 보이는 것일 수 있다. 지혜를 얻으라고 권면하지만, 지혜와 지식은 내가 똑똑해 져서 나 혼자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붙어 있고 그 분을 의지하는 것, 즉 훈계와 말씀을 내 눈에서 떠나게 하지 않고 내 마음 속에 지키는 것이다 (20-21절).
아직도 내가 하나님을 위해 뭔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이건 독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다.
그래서 지혜를 구하는 삶이란 내가 성공적인 무언가를 이뤄내는 것 보다는 주님께 붙어있는 삶이다. 추구하는 것을 언제가는 얻게 되듯, 지혜를 추구하는 이들은 하나님을 얻게 되고 그리스도를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23절 말씀이 좀 걸린다. 개역 및 개정 그리고 그 외 몇 번역본, 또한 많은 영번역에서도 '생명의 근원' 혹은 '생명의 샘' 등으로 번역했는데, 또 다른 여러 번역에서는 '삶의 문제들'로 번역되었다. 70인역에서 '생명 혹은 삶'에 해당하는 단어를 조에이를 써서 '영원하신 창조되지 않은 생명'으로 번역 했기 때문에 아마도 '생명의 근원'으로 이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마음에서 그런 영원한 생명이 나올 수 있을까? 물론 앞 구절에서 '내 말'을 마음 속에 지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마음 자체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했다고 예레미야 17:9에 선포한다. 신약에도 마음 자체를 그리 좋게 보지는 않는다. 물론 마음은 사랑하는 기관이기에 '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마음은 타락해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마음을 주심이 필요하고 (겔 36:26) 우리 또한 항상 마음을 새롭게 함이 필요하다 (롬 12:2).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던, 아니면 타락해서 인생의 모든 문제들이 거기로부터 야기 되던, 그에 대한 명령은 '지키라'는 것이다. 마음을 하나님에게도 드리고 세상에도 주고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함을 말씀한다.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주님, 지혜는 말씀의 문제, 마음의 문제임을 봅니다. 내가 똑똑해져서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나의 부족함과 어리숙함을 인정하고 주께 붙어있기 원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그리스도를 취할 때 예수님은 나에게 지혜가 되십니다. 주님께서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고 (히 5:8-9) 하신 것 처럼, 지혜는 순종과 고난을 피해서 쉽게 가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게 되기 위해 고난 받으신 주님을 본받는 것임을 기억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