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등을 하다보면 나도 그렇고 상대도 그렇고 오해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보통 문장 끝에 ^^를 붙인다.  (좀 소심 성격 ^^)  읽는 음성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3장9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라고 하시며 선악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은 아담을 찾으시는 여호와의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도 전에 그랬지만, 많은 경우 이 부분을 ‘이느무시키 도대체 어디 숨은 거야?  찾으면 혼내 주겠다!’라는 식으로 읽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숨었다고 못 찾으실 분도 아니고 선악과를 먹었으니 찾아서 혼내 주겠다고 찾고 있을 분도 아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말은 사실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내 준다.

오늘도 계속해서 ‘내 아들아’가 두 번 나온다.  유교적 배경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내 아들’이라는 말은 사랑의 음성 보다는 권위주의적으로 들리기 쉽다.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여러 명령들을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지시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 ‘내 아들아’라는 표현은 정말 사랑과 정과 안타까움이 똘똘 뭉친 말이다.

성장하면서 부모로부터, 특히 아버지로 부터 살가운 사랑보다는 엄격한 것을 더 많이 경험한 이들에게 이러한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거나 부자연스러울 수 있고, 동시에 이제 자기 자신의 자녀들에게 사랑의 표현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아버지의 모습은 권위주의적이고, 이해보다는 비판을, 격려보다는 채찍질을 더 하는 것으로 각인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12절에는 아비의 징계는 기본적으로 그 아들을 기뻐함에 기인한다고 말씀한다.  사실 잔소리를 하는 이유도 아들의 현재 모습이 안타깝고 더 좀 잘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리라.  물론 아들의 입장과 상황을 고려하고 그 성숙도에 맞게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아들과 아비의 사이에서 아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기 까지는 징계가 없을 수 없다. (요즘 교육은 아예 징계가 필요없다고 하지만, discipline과 abuse는 다르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명령의 목적은 모두 아들의 잘됨에 있다.

몇 가지 중요한 것이 나오는데 공식이 다음과 같다.

1.    아비의 법 잊지 말고 마음으로 명령을 지키기 – 장수, 많은 해, 평안을 더한다 : 마음에 바탕한 관계성

2.    ‘인자와 진리 mercy and truth’는 신약은 없고 구약에서 8-9번 나오는데, 하나님 혹은 왕과 관계가 있다.  이것을 목에 메고 마음 판에 세기라고 하는데, 바로 율법의 기본 정신이다. –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은총과 귀히 여김을 받는다 : 법의 근본 정신을 앎

3.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의지하고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라,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자아를 부인함

4.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아라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나라 – 네 몸에 양약이 되어 골수를 윤택하게 할 것이다  : 좀 컷다고 자만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함

5.    네 재물, 그리고 증가한 것의 첫 열매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 창고가 가득차고 포도즙틀에서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물에 대해, 또 수입에 대한 첫 것을 드리는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하는 삶, 재정을 바르게 관리하는 삶

6.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아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아라 - 징계는 사랑 받는 자의 특권이다  : 하나님을 믿는다고 삶이 항상 편하고 일이 쉬운 것은 아님.  유쾌하지 않은 삶의 부분도 더욱 사랑을 경험하는 자녀로서의 특권으로 이해함

정리해 놓고 보니 솔로몬의 아들 사랑, 대왕의 위치에 있지만 아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전달되는 기분이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하신 생명으로 거듭나 그 분의 자녀가 된 모든 이들에게 말씀하시는 깊은 사랑의 음성으로 들린다.

주님, 이 아침에도 주의 사랑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아름다운 성우가 문장을 읽으면 웃기는 문장도 멋있게 들릴 수 있고, 뛰어난 가수가 부르면 이상한 노래도 그럴 듯 하게 들릴 수 있는 것, 동시에 그 반대도 가능함을 압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일방적이고 강압적이며 건조한 명령으로 오해한 나의 죄성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명령은 우리를 향한 사랑의 고백임을 배웁니다.  그 사랑의 음성으로 힘 얻어 영 안에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