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내용으로 기도를 한 바울은 이제 ‘그러므로’ 로 시작하여, 어제 기도는 하나님께 올렸으니 이제 우리가 해야할 몫이 있다고 말을 한다.  즉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인데, 여기 ‘부르심’과 ‘일’은 같은 단어이다.  ‘일’을 영어로 vocation이라고 번역하기도 했는데, 소명 즉 우리의 일 혹은 직업, 항상 하는 것들 안에서 부르심에 받은 것에 합당하게 걷는 것이다.

그런데 ‘합당하게’ 는 어떤 것일까?  2절 부터 그것을 설명하는데, 첫째로 나오는 것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는 것이다.  왜 겸손을 말하고 있을까?  에베소 교회는 이 서신의 내용처럼 매우 훌륭한 교회였던 것 같다.  그래서 자칫 영적으로 교만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두번이나 묶인 자신을 상기시키면서 지금도 겸손과 온유를 말하고 있다.  교만과 횡포는 나의 오랜 친구라서 틈만 있으면 튀어 나온다.  겸손을 빙자한 숨은 교만도 있다. ㅠㅠ

이어서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고 하는데, 고전 13장에는 사랑을 말하면서 맨 처음부터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말한다.  이 원어는 ‘마크로뚜미아’로 마크로+뚜미아 합성어 인데, 마크로는 ‘길다’ 라는 뜻이고 ‘뚜미아(뚜모스)’는 ‘고통, 화, 열기’ 등의 뜻이 있다.  즉 오랜 고생이라는 뜻이다.  인내는 그냥 편하게 유보하는 것이 아니라 부딪히면서 고통을 견뎌내는 과정이다.  그것이 원인은 사랑이고 목적은 서로 용납함이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것의 이유와 목적을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됨’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가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 즉 ‘그 영의 연합’인데, 평안의 매는 줄 안에 있고, 또한 그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고 말씀한다.  성령의 연합하심은 이미 있지만 인간은 현실에서 그것을 너무도 쉽게 깰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원인과 당위성으로서 계속 ‘하나됨’을 말씀한다.

4절부터 6절까지는 원어에 가깝게 번역을 해본다.

너희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것 처럼 한 몸 그리고 한 영

한 주 한 믿음 한 침례

모든 것 위와 모든 것을 통하는 (시간, 공간, 방법 등) 그리고 너희 모두 안의 한 하나님과 아버지 (가 계시다)

이렇게 굳이 번역을 한 이유는 개정역에서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라고 한 번역을 읽으면 저기 어디 멀리 몸이 있고 성령도 있는데 한 분이로구나 라는 느낌이 들지만, 원어에서 처럼 ‘한 몸 그리고 한 영…’ 하게 되면 이미 우리가 그 안에 있는 한 몸 그리고 한 영임을 느끼는 것 같아서이다.

처음 하나님을 믿어서 말씀을 읽기 시작하다가 믿음이 좀 자라게 되면서 혼란스러워 지는 것이 왜 하나님은 한 분이라며 서로 다른 교회들이 존재하는가 이다.  분명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많은 이름과 성격의 교파와 교단들이 존재하고 그들 사이에 서로 알력이 있고 헐뜯고 있을까 하는 질문이 생긴다.  과연 정말 ‘한 주 한 하나님과 아버지’를 두었다면 그런 분열이 있을 수 있을까. 

대학교 때 어느 선배가 하나님이 여러 교파를 인정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에 맞게 골라서 교회를 다닐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배려라고 말한 것에 대해 그때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후에는 말도 안되는 인본주의 적인 발상임을 깨달았다.  만약에 그렇다면 오늘 말씀의 ‘오래 참음’ 혹은 ‘긴 고통’이 필요없고 더우기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 필요도 없다.  ‘각자 소견대로’ 하면 된다.

그래서 ‘겸손’을 처음 말한 것을 다시 상기한다.  어떤 사람이 소위 ‘주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았어도 그 부르심은 어떤 큰 교회나 교단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한 소망의 그 부르심을 위한 것이다.  목회자가 아닌 일반 직업에서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은 많은 이들 역시 동일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그 부르심을 위해 있다.  오늘 나는 그 부르심에 합당한 주의 발자취를 따르는가?

주님, 벌써 몇십년을 이 문제와 싸우지만 용기가 없고 믿음 없어서 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싸움이 필요한가 라고 하며 합리화하고 피해 왔습니다.  하지만 한 주 한 하나님 한 영 한 침례,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 안에 있음을 말해주고 그 부르심에 합당히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주님, 갈리고 나뉘어져 있는 여러 ‘교회들’을 회복하시옵소서.  인본주의적 혹은 정치적인 하나됨이 아니라 ‘한 영’임을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