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권리보다는 의무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는 느낌이다.  비종교인들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해야하고, 그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걱정하며, 그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비단 타종교 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시, 아니 사실 제대로 기독교 생활을 하게 되면 오히려 훨씬 지킬 것과 의무가 많고 그것들은 우리를 짖누른다.  예전에 불교도와 기독교도의 행복도에 대한 설문조사가 있었는데, 불교도들의 행복도가 더 높았다.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지만 오늘 교인들에게는 오히려 더 많은 짐들이 부여된 것 같다.

2장 전체에서 은혜와 구원을 말하면서 부각된 단어가 ‘시민권’이라는 단어이고 또 ‘권속’이라는 단어이다.  개정역에는 잘 나와있지 않지만 12절 ‘이스라엘 나라’ 에서 ‘나라’ 라는 단어는 ‘폴리테이아스’라는 단어로 여성 단수 명사, 영어로 ‘commonwealth’ 혹은 ‘citizenship’ 으로 번역된다.  즉 이 ‘시민권 citizen’이라는 단어는 ‘연방 commonwealth’라는 뜻인데, 이 commonwealth라는 단어를 잘 살펴보면 common이라는 단어와 wealth라는 단어의 합성어이다.

바울은 에베소서를 쓰면서 이제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 구원 얻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전에는 멀리 있던 자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13절).  구약 시대에는 오직 이스라엘 만이 하나님의 commonwealth였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이들이 이 commonwealth 안으로 들어왔다.  당시 로마 시민이었던 바울은 로마 시민권의 막강한 권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보다 훨씬 더 강력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이 있음을 피력한다.

미국에 살면서 이 시민권에 대해 경험하게 되는데, commonwealth라는 개념은 내가 잘 나거나 못 나거나 돈이 많거나 적거나를 떠나 적어도 기본적으로 인권에 대해 보장 받는 그 어떤 것이다.  돈이 있거나 직장이 있어서 건강보험을 들으면 다행이지만 그럴 수 없을 때 메디칼 혹은 메디케어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보조를 받는다.  어떤 분은 어려운 수술을 받아 수술비가 15만 불이나 나왔지만 한 푼도 내지 않는 경우를 보았다.  바로 이 commonwealth의 힘이다.  마을 마다 무료 공공 도서관이 있어서 마음껏 책을 볼 수도 있고, 교육도 역시 국민의 권리로 인식이 되어 고등학교까지 무상 교육에, 대학교 학비도 많은 보조를 받는다.  직업이 없어서 수입으로는 음식을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푸드스탬프도 준다.  물론 이러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악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이 ‘시민권’ 즉 ‘일반적으로 공유되는 부’의 힘은 강대국인 미국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러면 믿는 이들이 (죽어서 가는 천당이 아니라) 이 땅의 하나님 나라 시민권자들로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은 과연 이 땅의 시민권 보다 더 나은 것일까?  모 교단에서는 십일조를 내지 않는 교인들에 대해 교인으로서 권리를 박탈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과연 ‘시민권’일까?  그리고 십일조가 ‘시민권자’로서 지어야 하는 책임과 의무일까?

2장 말씀에서는 몇 가지 시민권의 모습을 말한다.

첫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이다 (1절).  하나님을 알게 되면 이것이 무엇인지 안다.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가끔 부러워 죽겠지만 (ㅎㅎ)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에 비하지 못하다.  그 재물과 소유의 기한은 몇 십년 가지 않는다. 

둘째는 진노의 자녀의 위치에서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 위치를 옮긴 것이다. (3-6절)  믿는 이들은 감옥에 갇혀도 그 실재 위채는 하늘에 있다.

셋째는 시민권이라는 법적 지위 뿐만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롭게 창조된 하나님의 걸작품 (10절)’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경찰이 사람을 세워놓고 조사하기 전까지는 모두 시민권자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겉으로 봐서는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예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하나님의 걸작품들이 되었다.

넷째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분을 소유하고 또 소망도 생겼다.  전에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복 주심의) 약속의 언약과는 상관없었지만 이제 그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12절).  

다섯째는 참된 화평을 얻었다.  하나님과 화평하고 사람들 사이에 나뉘어진 분열과 분쟁을 끝내고 한 새 사람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서로 눈치보고 어색해할 필요가 없어졌다.

여섯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의 모든 성도들과 주의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 fellowcitizens’이 되었고 하나님의 식구가 되었다.  누가 내 식구를 건드리면 가만 두지 않는 것 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식구가 되어, 만약 마귀가 건드리면 하나님이 그냥 두지 않으신다.

마지막으로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간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  시민권자들은 그냥 개개인의 권리만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서로 연결되어 지어져 가야 하는 의무가 있고, 이것은 당연한 것이며 동시에 권리라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의 일부가 된다…  이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내 아래와 내 위에 함께 싸여갈 벽돌들이 있어야 한다.  시민권은 개인적이고 독단적인 개념이 아니라 common이라는 개념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바로 교회이다.

주님, 하늘의 시민권의 놀라운 계시를 다시 한번 보기 원합니다.  내가 누려야 할 것들을 반드시 누림으로 당당해지기 원합니다.  교인으로서 종교적인 면에서 눌림을 당하고 죄책감을 당하는 것에서 해방되게 하시고 정말 하나님의 선물인 그 은혜를 통한 구원을 다시 한번 누리게 하시며, 이 일반적이고 공동의 어떠한 누림이 오늘 내 삶에 있기 원합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지만 나의 위치는 하늘에 있음을 알게 하소서.  오늘도 나와 함께 지여져 갈 귀한 믿음의 식구들과 이러한 나눔을 통해 연결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