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지 않으면 말이 많아진다. 기도하지 않으면 쓸데 없는 공론만 일삼게 된다. 히스기야가 산헤립의 위협성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기도한 것은 모든 것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히스기야가 얼마나 길게 기도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내용만 보면 그리 길게 한 것 같지는 않다. 개인적으로 적어도 무릎꿇고 한 시간은 기도해야 기도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율법적인 생각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기도해 본지도 꽤 오래 되었다),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처럼 기도는 삶이어야 함을 본다.
큐티는 말씀과 묵상이지만, 기도가 빠질 수 없는 것이 말씀 안에 주님의 임재가 있고 주의 음성을 들으며 주께 아뢰기 때문이다. 기도 없는 말씀 없고, 말씀 없는 기도 또한 없다.
기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감사도 필요하고 나의 죄와 연약함에 대한 자백도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 히스기야의 기도를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을 선포하고 난 후에 비로서 그가 원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 기도다. 이러한 하나님을 높이고 인정하는 것이 있음으로 비로서 모든 문제에 대한 실마리 그리고 명분이 보인다. 히스기야는 자신들의 구원 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임을 기도했는데 (19절), 나의 필요나 불안한 상황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을 위해서 또 주가 모든 것의 주권자 되시며 구원자 되심을 선포하며 인정하며 아뢸 때 주는 즉각 응답하신다.
히스기야가 원했던 것은 단지 이번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었겠지만 하나님은 이번 일로 아예 약 100년 후 앗수르의 멸망을 예언하시는 것 같다 (25, 28절). 주님은 나의 기대와 바람을 뛰어넘어 응답하신다.
한국 교회가 위기라고 하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것은 충심으로 기도하는 귀한 종들 (교역자들만이 아님)이 아직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 하나님을 나의 생각이나 나의 차원 혹은 나의 기대 안에 가두어 놓지 말게 하소서. 하나님은 나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어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심을 이 아침에 고백하며 선포합니다. 주를 잃은 패역한 세대가 되었지만 말씀대로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것을 믿습니다. 주의 이름이 오늘 내 안에서 높여지시고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서 높여지시며, 세상 만방에서 높여지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