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약속을 현실에 살아내는 믿음 (히 11:1-7)
보통 '믿음장'이라고 하는 11장은 믿음에 대한 정의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믿음 자체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과 내용과 방법을 말해야 한다. 하지만 1절은 그냥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것은 믿음 자체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믿음의 실체화 즉 '믿음 생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1절을 원어에서는 '그런데 믿음은 소망되어지고 있는 것들의 실체 (실체화, 추측 혹은 확신), 보이고 있지 않는 (것들)의 확신이다' 정도로 되어 있다. 즉 이것은 믿음이 무엇이다를 말하기 보다는 그러한 믿음으로 소망하는 것들을 현실에 실체화 하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가시적인 삶 속에 확신하면서 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2절은 '그 장로들이 그래서 이 안에서 증거가 되어졌다'라고 하는데, 3절로 이어지면서 이 '장로들' 즉 믿음의 선진들의 삶에 대해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은 이제까지 계속 말해온 것에 대해 증거를 예로 드는 것인데, 믿음의 선진들의 삶이 녹록지 못하고 고난을 받았지만, 미래의 약속에 대해 믿고 의지함으로 이 세상을 살았었음을 상기시킨다.
3절은 창조를 언급하는 것 같지만, '세상'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아이오나스'로 '세대' 혹은 '시대'를 의미하고 복수로 쓰일 때는 '영원'도 의미했는데, 여기에는 복수로서 '세대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들린다. 보통 '세상'을 의미하는 말 '코스모스' 였다면 창조만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이 '아이오나스'를 쓴 것을 보면 아마도 각 세대와 각 선진들을 통해 1장 내용 처럼 각각 말씀(레마)하신 것에 초점을 두는 것 같은데, 이제까지 '옛 언약' '첫째 것' '법'등을 말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세대들이 하나님의 레마로 (여격, 간접 목적어) 세워진 것을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데, 믿음으로 (여격) '보이게 되고 있는 것들이 나타나지지 않고 있는 것들로 부터 되어졌다'라고 한다. 세상의 창조는 물론이고 믿음의 눈으로 봐야 이러한 보이는 세대들의 이면이 드러나게 된다.
11장 계속해서 '믿음으로'라고 번역된 단어는 모두 '여격'으로 영어에서는 by faith 라고 번역됐지만 원어에서는 by보다는 to 즉 여격 (간접 목적)을 의미한다. 그래서 믿음을 어떤 수단으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해 믿음으로 (to)를 설명한다. 롬 1:17 개정역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라고 번역했는데, 원어는 '대개 그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지고 있다 믿음 밖으로(부터) 믿음 안으로 (into)' 로 되어 있다. 즉 '하나님의 의'를 말하면서 그것은 그 발로도 믿음이고 그 목적 역시 믿음임을 말한다.
각 세대와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 설명을 시작하면서 아담은 건너 뛰고 아벨부터 시작하는데, 아담은 엄밀히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고 타락한 인류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의 둘째 아들 아벨이 첫째 가인에 비해서 '믿음으로 (to)' 더 나은 제물을 드렸고 결과적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다. 그런데 여러 한글 번역본이나 영어번역들도 단지 '그가 죽었다'고 하지만 원어에는 '그것 때문에 (dia) 그가 죽었다'라고 한다. 즉 처음 언급하는 인물인 아벨에 대해 그가 더 (많은, 나은) 제물을 드림으로 의롭다는 증거를 얻긴 했지만, 또한 그 믿음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언급되는 인물인 아벨부터 이 믿음이 얼마나 큰 각오와 대가를 요구하는지 말하고 있다.
둘째 언급하는 인물은 에녹인데, 아벨이 올바른 제물을 드리는 삶을 살던 믿음의 사람이었다면 에녹은 그 일생을 '신앙생활'했던 인물로서 아벨과는 반대로 아예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 '기쁘시게 하다'와 '증거를 받다' 모두 완료형인데, 이러한 시제는 에녹의 삶이 지속해서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사실과 결국 그의 인생의 마지막에 '완료' 즉 완전을 이룸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심을 받았음을 말한다. 이러한 사실 역시 믿음이 그 수단만이 아닌 그 목적격 혹은 여격이 된다. '믿음의 삶' 혹은 믿음 자체가 우리가 살아내야 할 '삶' 혹은 생명이라는 것이다.
6절은 5절의 '기쁘시게'를 다시 언급하며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적지 않은 때에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과 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이 '필연적 (dei)'이라는 것을 잊는다.
7절로 이어지는 믿음의 사람은 노아인데, 노아는 정말 분명한 '세대'를 가르는 인물로서 홍수 이전의 시대와 그 후 시대에 극명한 차이를 가져왔다. 이때는 어쩌면 창조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구상에 들끓던 인류 중에 단지 8명만 살아남았던 '세대'였는데, 노아는 '아직 보여지고 있지 않은' 일들에 대해 경고를 받았고 그는 그것을 믿었다. 이 '아직 보여지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 그때까지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라는 의미인데, 계속해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말한다. 즉 이것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아니라 미래에 예견된 것들로서 이러한 것들을 볼 수 있으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 현재를 사는 신앙인들 역시 다가오는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믿음이 있다. 특히 이러한 그의 믿음은 '세상을 정죄'했는데, 여기 '세상'은 3절 '아이오나스'가 아니라 '코스모스'이다. 이 '세상'은 정죄를 받았지만 그는 그 믿음을 따라 의의 상속자가 되었다. 이러한 노아의 삶은 노아의 때와 같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동일한 경고를 주며 동시에 약속에 대한 소망을 준다.
주님, 믿음은 나의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믿음은 신비로운 것이고 주님의 선물이며, 은혜로 부터 말미암았음을 봅니다. 믿음이 무엇이고 그 대상이나 내용을 아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그 믿음을 살아내는 것이 이 시대에 요구됨을 배웁니다. 우리로 믿음을 따라 살게 하시고, 그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주의 자녀들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