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기초들에 따라 구약의 인물들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믿음 (히 11:8-16)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하며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 알고 있다. 그런데 여기 '알다 '라는 말은 성경에 자주 나오는 '오이다'나 '기노스코'가 아니라 ἐπίσταμαι로 '어떤 것에 생각을 맞추다, 집중하다, 어느 곳에 가 본 경험이 있다, (미리) 알다' 등을 의미한다. 신약에 14번 쓰인 말인데, 영어나 한국어에도 이에 해당하는 단어를 찾기 쉽지 않기 때문에 그냥 '알다 know'로 번역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장소'이고 다른 하나는 '상황'이다. 즉 '어디'로 갈지도 몰랐고, 그 가는 곳이 '어떠한' 곳인지도 사전 정보가 없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가라'고 하실 때 '어느 나라'를 말씀해 주시면 그 나라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아보고 문화나 언어도 가기 앞서 공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전혀 없이 그냥 '가라', 그것도 지금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내가 지시할' 즉 앞으로 어디인지 말씀하실 땅으로 가라는 것이면 그 어떤 준비를 할 수도 없다. 이것은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는데, 우선은 자신이 살고 있던 곳을 떠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결정을 자신이 즉흥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멀고도 험한, 목적지와 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이 떠난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다른 교회로 청빙을 받아 다음 목회지를 결정할 때, 그 가게 될 교회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아내어 고민함으로 선택하는 것은 이 아브라함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다)

결국 '약속의 땅'에 도착했는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믿음으로' 그 '약속의 땅'에서 마치 이방 땅에 있는 것 처럼 거류하면서 집을 지어 정착하지 않고 자손 삼대까지 장막에 거했다고 한다. '거류'로 번역된 단어는 παροικέω 인데, '옆에' 와 '살다'의 합성어로 '거류' 즉 임시 거처를 정해 살았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다시 이 '믿음'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을 구분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당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이 장막에 거했던 이유가 다만 세상적인 관점으로 목축업을 해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삼대가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받'았기 때문이고 (9절), 그 '약속의 땅'을 넘어 즉 '땅'에 속한 도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설계자시고 건축자이신 기초들을 소유한 도성'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 '바라다 ἐκδέχομαι'는 '밖으로'와 '취하다'의 합성어이다. 아브라함도 실수가 적지 않았고, 하나님도 전부를 보여주지 않으셨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삶 속에서 이 땅에 속한 어떤 것이 아닌 새로운 하늘에 속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이 이미 계획되어 있었음을 말한다.

11절은 이제까지 '믿음으로'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는데, 사실 사라는 믿음'으로' 잉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비웃기 까지 했는데 (창 18:12), 그러한 경우 조차 '믿음으로 to'이어져 이삭을 낳았다. 사실 번역이 미흡한데,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고 한 부분이 마치 사라가 믿음이 좋아서 잉태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원어에는 '약속하신 이가 미쁘신 줄 깨닫게 되었다' 정도로 되어 있다. 즉 이것은 사람의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을 주신 즉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은 근원에 대해 말하는데, 창 21:1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라고 되어 있다. 사라의 개인적인 믿음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다시 '믿음으로 to'이다.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여러 선진들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한 구원이 갑자기 생겨났거나 새로운 종교가 창시된 것이 아니라, 과거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계속 이어져 온 것이며, 결국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 안에서 이러한 모든 것이 이루어짐을 말한다. 그래서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는 말씀은 구약에는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었기 때문에 모두 지옥 간다는 말이 아니라, 구약의 인류들도 '기초들' 즉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을 통해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 죽었고 약속을 받지 못했지만 (13절) 그 기반은 '믿음을 따라' 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경륜에 부합했고 또한 증인의 삶을 살수 있었다.

주님, 이러한 '믿음으로'가 있음을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고 매우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도 주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결정이 합리적이거나 인간적인 것으로만 머무르지 않게 하시고 '믿음으로'가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과오들과 실수들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내려 놓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이름을 붙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