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때문에, 믿음에게 (히 11:17-31)
보통 개정역에서 '믿음으로' 라고 번역된 말은 원어에는 '믿음을 통하여 dia' 혹은 '믿음 밖으로 (으로부터 ek)' 라는 전치사가 붙어있다. 하지만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으로'는 모두 이러한 전치사가 없이 한 단어이며 '여격'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은 각 믿음의 선진들이 그들의 믿음을 가지고 위대한 일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 자체가 부각되고 삶의 주인이며 목적임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굳이 번역한다면 믿음을 '가지고'가 아니라 믿음 '때문에' 정도가 된다. 물론 여기에는 믿음을 '통하여'의 의미도 있지만 그들의 삶이 믿음으로 살았던 것은 물론이고 그 이전에 믿음이 그들의 삶을 인도했다는 뉘앙스이다.
원어에는 17절 역시 '믿음으로'로 시작하는데, 계속해서 31절까지 이렇게 되풀이 된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믿음은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요구되었는데, 그가 이삭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약속을 받은' 때문이었다. 그 약속은 이삭을 통한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치라고는 하셨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들 중에 일어나게 하실 것을 알았다. '여호와 이레'로 이삭은 죽지 않았지만, '비유'로는 죽었다 살아난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부활신앙을 주었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수 있도록 인도했다.
선진들의 이야기는 매우 많고 풍성하지만 간략하게 한줄씩 정도로 요약을 했는데, 대개 죽을 즈음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 '믿음에게 (을 향하여, 여격)' 즉 믿음이 목적이며 영원한 도성을 바랐기 때문임을 말한다. 하지만 모세에 대한 기록은 비교적 긴데, 이것은 모세가 옛 언약을 가져온 사람이기 때문이고, 모세 역시 '법'이 아니라 따지고 보면 '믿음으로' 였음을 밝히기 위함인데, 그에 대한 기록에 대해 4번이나 '믿음으로'라고 되어 있고 특히 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라고 말하며 율법을 가져온 모세 역시 '그리스도'가 그 목적임을 말한다.
26절 역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이 없었기에 '믿음으로' 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믿음에게' 혹은 '믿음을 인해' 정도로 번역하면 그들이 홍해를 건넌 것은 그들의 믿음의 의해서가 아니었음을 말한다. 여리고의 이야기는 물론 기생 라합의 이야기 까지 각자 개인이나 혹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부각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구원 역시 믿음이라는 또 다른 행위로 얻게 된다는 모순을 낳는데, 구원은 오직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데 (엡 2:8), 원어에는 '은혜에게 (여격) 믿음을 통하여 (did)'로 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후에는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선포한다.
주님, 우리 삶의 목적과 내용과 수단 모두가 믿음이 되기 원합니다. 이 믿음은 본래 우리에게는 없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믿음을 주신 분도 그리스도시요, 믿음의 주체도 역시 그리스도이심을 다시 묵상합니다. 우리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더 만들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