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ready but not yet (히 12:18-29)

오늘 구절은 개정역 번역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다른 번역으로 읽기를 권한다. 18-22절도 그렇지만 25절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는 너무 잘못된 번역인데, 마치 우리가 배반하고 있는 것 처럼 번역되었다. 킹제임스흠정역은 '우리가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그분에게서 돌아선다면 어찌 더 피할 수 있겠느냐'로, 우리말 성경은 '하물며 우리가 하늘로부터 경고하시는 분을 배척하고 어찌 피할 수 있겠습니까'로 번역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 배반하지 말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배반'한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다.

과거 모세가 이르렀던 시내산의 어떠함과 다르게 우리 믿는 이들이 오게 된 곳은 매우 은혜롭고 영광이 충만한데, 22절 '이른 곳은'의 시제는 완료형이다. 즉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미 22-24절의 영광스러운 곳들로 (여격, to) 이미 이르렀다는 것이다. 여기 모든 장소는 '여격'으로 '~에' 혹은 '~에게로'를 의미한다. 그래서 22-24절은 '시온 산에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천만 (혹은 무수한) 천사들에게로, 우주적 집회 (πανήγυρις)로 그리고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교회로 그리고 모든 것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에게로 그리고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에게로 그리고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에게로 그리고 아벨 보다 낫게 말하고 있는 뿌리는 피에게로 (이르렀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이르렀음'에도 그것이 끝이 아닌데, 25절은 '거역하지 말것을 보아라 (조심하고 있으라)'고 시작한다. 이렇게 '이르렀지만' 28절은 '부동의 왕국을 (우리는) 받고 있다'라고 하는데, 개정역은 '받았다 ' 즉 완료형으로 번역했지만 원어나 영어 킹제임스는 현재진행형이다. 완료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가 중간에 거역한다면 그 부동의 왕국 안으로 온전히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킹제임스 흠정역이 잘 번역했는데, '그러므로 우리가 움직일 수 없는 왕국을 받을진대 은혜를 소유하자. 이 은혜를 힘입어 우리가 공경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속한 두려움을 가지고 받으실 만하게 하나님을 섬길지니'라고 되어 있다. 우리가 조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섬길 수 있는 것도 은혜를 소유함으로 가능하다.

29절 '소멸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성경 여기 단 한번 나오는 말인데, '우리 하나님'을 '소멸하는 불'로 정의한다. 성경에 하나님을 정의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막 12:29), 하나님은 빛이시라 (요일 1:5), 하나님은 사랑(아가페)이시라 (요일 4:16) 등이고 구약에는 하나님에 대한 정의가 더 많이 나온다. 이렇게 하나님을 정의한 구절들 중에는 아마도 이 구절이 유일하게 부정적으로 들리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참기만 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시는 심판자이심을 말하고, 그 이유는 은혜를 소유한다고 방종하는 것이 아니라 공손함과 경건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야 하기 때문이다.

주님, 그 왕국의 그 실재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기까지 은혜를 붙잡고 그 은혜로 인해 주 앞에 더욱 겸손하기 원합니다. 우리를 주 앞 영광에 이르게 하셨사오니 그 영광 안으로 인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