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넌 자들 (히 13:18-25)
히브리서가 특이한 것은 23절 디모데를 언급하며 바울이 쓴 것 같고 후반부에는 서신서의 성격을 띠지만, 다른 서신서들과는 다르게 전반부에 수신자들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한 지역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는 것이 아닌, 모든 믿는 자 즉 '히브리인들'에게 전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3절에는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고 하지만 이 '너희'가 누구인지, 어떤 교회인지는 알 수 없다. '히브리인'이라는 말의 의미는 '물 건넌 자' 즉 '도강인'들을 의미하는데, 과거 애굽에서 홍해를 건넌 히브리인들이 (이 때는 '유대인'이라는 말이 없었음) 강을 건넘으로 더 이상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 같이 주님을 믿는 이들 역시 다시 세상이나 과거 유대교로 돌아갈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기자가 부탁하는 것은 '우리에 대하여 기도하'라는 것인데, 앞의 '인도하는 자들'로서 '우리'는 삶이 먼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함을 말한다. 인도하는 형제들은 먼저 이러한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인도하는 일을 내려 놓아야 한다. 이러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속히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20절은 흥미로운데 정관사 '호'가 7번이나 쓰였다. 원어로 하면 '이제 (혹은 그런데 de) 그 평화의 그 하나님, 그 양들의 그 위대한 그 목자이신 우리 그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로 부터 영원한 언약의 피로 그 이끌어 내신 (분이)' 정도로 되어있다. 마지막으로 이제 더 이상 예전 종교가 아니라 바로 '그' 또 '그' 또 '그' 또 '그' 가 계속 되는 것이다. 이 모든 정관사 '그'는 다른 것이 아닌 '예수'를 가리키는데, 21절 역시 정관사 '호'가 6번이나 나온다. 이러한 모든 정관사는 바로 '그리스도'와 '우리' 즉 교회를 연결하며 우리가 주님 안에 있고, 우리가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주님께서 '자신의 뜻을 (우리로) 행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을 열면 주님께서 행하시고 인도하신다.
주님, 강을 이미 건넌 자들로서 다시 건너편을 바라보지 않기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편에 계시며 인도하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세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