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누리고 또한 겪고 있는 언약을 통한 자유의 자녀들로서의 신분 (갈 4:21-31)
신약의 기록은 시제를 제대로 보는 것이 꽤 중요한데, 21절은 '율법을 듣고 있지 않느냐 (현재진행형)' 24절은 하갈과 사라의 예가 '비유'임을 말하며 '종을 낳고 있는 (현재진행형, 율법은 현재도 종들을 양산하고 있다)' 25절은 '(하갈이) 자기 자녀들과 함께 종노릇하고 있다 (현재진행형)' 26절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현재진행형) 곧 우리 어머니이다 (현재진행형)' 29절은 '그러나 그때 육체를 따라 난 사람이 영을 따라 난 사람을 핍박하던 (미완료) 것같이 지금도 그러합니다 (원어참조, 현재진행형 동사는 없지만 '지금'이라는 말로 현재를 말함)' 30절은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원어 참조, 미래형이 아닌 가정법) 마지막 31절 역시 우리가 '자유로운 (여자에게 속한) 자녀들이다 (현재진행형)'이라고 말씀한다.
하갈과 사라를 비교하며 창세기의 이 사건이 '비유' 즉 율법과 복음에 대한 것임을 말한다. 율법은 분명 거룩하고 귀한 것이지만, 사실 '육체를 따른' 하갈의 경우처럼 시간적으로는 자유자 사라를 통한 것 보다 먼저이다. 조금 더 기다렸었다면 그 원래 언약을 따라 사라가 아들을 얻을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사라가 자신의 종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주며 대신 아들을 낳으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결국 언약을 따라 자유자인 사라가 이삭을 낳자 하갈과 이스마엘은 쫓겨난다. 이들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셔서 후에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지만, 결국 시내산을 바탕으로 하는 것은 거룩한 율법임에도 종노릇하게 하는 것인데, 이것은 앞으로 있을 미래의 일이 아니라 바로 현실에서 복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함으로 자유하지 못하고 죄의 노예가 되어 사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 믿는 이들, 그 원래 언약에 따라 중생한 (regenerated) 이들은 지금 현재 그 자유를 누려야 한다. 동시에 그러한 자유를 누림에도 불구하고 시간적으로는 먼저 난 종노릇하게 하는 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이것이 믿는 이들이 자유하는 은혜를 누리는 동시에 박해를 받는 현실이다.
주님, 박해받는다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주어진 자유를 누리며 감사하는 우리 되기 원합니다. 갈길이 막막하지만 우리에게 용기가 되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