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님 (눅 22:39-53)
오늘은 수요일인데, 소위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이라고 불리는 날은 사순절을 시작하는 날이다. 올해는 지난 3월 6일에 시작했는데, 이 날의 유래에 성경적 혹은 기독교 역사적 배경이 전혀 없지는 않겠고, 그 유익 역시 없지는 않겠지만, 이교도적 배경 역시 존재하고 (http://linesandprecepts.com/2016/02/10/the-pagan-origins-of-lent-and-ash-wednesday/), 매년 '절기'로 만들어서 '지키'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 의문해 보게 된다. 이러한 '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단 한번 성육신 하시고 또 단 한번 죽으시고 또 단 한번 부활하셨음에도 매년 그 성육신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서서 마치 드라마를 꾸미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고난 주간이나 소위 사순절 Lent 중에는 고기를 멀리하고 금욕하는 기간으로 삼는데, 그 말은 그 날이 끝나면 자유로와 진다는 얘기도 된다. 초대 교회에서 이같은 절기를 지켰다는 기록은 전무하다. 과거 유대인들도 원래 율법에는 없던 규율들을 계속 만들어 내어 그 자체를 지키기도 어렵던 율법에 더욱 삶을 옭아 매었다.
주님께서 죽으심은 우리로 죄에서 자유하게 하시기 위함이었고, 부활하심은 우리로 온전히 의로워지게 하기 위함이었다. 주님께서 오늘 말씀 중 명하신 것은 40절 '기도하라' 46절 다시 '기도하라' 51절 '참으라' 셋이다. 유대인들의 기도 자세는 보통 '서서 기도 (마 6:5, 막 11:25)'하는 것이지만, 이제 고난 받으시기 바로 전에는 몸소 '무릎을 꿇고 (41절)' 기도하심으로 본을 보이셨다. 흥미로운 것은 두 번의 '기도하라 (40절, 46절)'시던 명령의 태는 중간/수동 이태동사이다. 즉 기도는 우리가 우리 힘으로 우리 마음대로 우리의 바라는 것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과 대화하는 것, 그 분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야 시험 혹은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이것은 육신을 입으신 주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43절은 천사가 힘을 더했음을 기록한다.
주님, 종교에서 더욱 멀어지고 주님에게 더욱 가까와지기 원합니다. 기도를 하게 됨으로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주님께 붙어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