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주 그리고 법과 그 법 (약 2:1-13)
1절은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고 시작한다. 원어로는 '내 형제들이여, 차별 안이 아닌 (차별 없는)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소유하고 있으라'로 되어 있는데, 이 '차별'이 무엇인지 2절부터 설명한다. 그런데 사람을 차별하는 것과 '영광'의 주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영광의 주' 혹은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여기 외에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에만 나오는 흔하지 않은 언급인데, 비슷한 것으로는 엡 1:17 '영광의 아버지'가 있고, 행 7:2에는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라고 기록하며 '영광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모든 문구들은 특별히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말하고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 그 외 모든 것들은 그 빛이나 가치나 권위를 잃게 된다. 사람들이 서로 차별하는 것은 남보다 잘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만, 그 차이는 소위 오십보백보로 궁극적인 영광이신 영광의 하나님이 나타나시면 모든 것은 낮아진다. 특히 '영광의 주'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 것은 과거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영광의 하나님'과 또 '영광의 아버지'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이심을 말한다. 주의 영광이 비출 때 우리가 잘났다고 여기던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부끄러워진다.
흥미로운 것은 2-3절에 야고보가 들었던 예가 오늘에도 동일함을 보는데, 당시나 요즘이나 소유의 차이를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모습이 세상이 아니라 '회당'에서 발생하는데, 다시 말해 야고보는 흩어진 열두 지파에게 썼기 때문에 그들은 회당에서 모였지만, 그래도 이제는 유대교 모임이 아니라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모임 즉 교회 모임을 가질 때도 이러한 차별하는 일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5절은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라고 하는데, 이 말씀은 가난한 자들은 무조건 믿음에 부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마음 역시 가난해서 물질적인 것 보다 영적인 것에 눈을 돌릴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물질적으로 가난하면서 마음도 교만하고 악하다면 이러한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6절 말씀도 마찬가지인데, 세상 모든 부자들이 모두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도 아니고 7절도 역시 그렇다. 개정역은 7절을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라고 번역했는데, 킹제임스흠정역도 이 '이름'에 대해 '너희를 부를 때 쓰는 그 귀한 이름'이라고 번역했지만, 원어에는 '너희 위에 (혹은 가운데 ἐπί) 불려지는 그 좋은 (칼로스) 이름' 정도로 되어 있다. 생명의 삶 해설 처럼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석하기 보다는 바로 1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즉 '예수'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낫다. 세상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을 업신여기고 비방하며, 모독하거나 욕할 때 사용한다. 하지만 그 이름 예수는 우리에게는 영광이고 가장 좋은 이름이다.
8절은 원어로 '너희가 어떻게든 (성경) 기록에 따라,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는 왕가의 법을 성취하고 있으면 잘하고 (칼로스) 있는 것이다' 정도로 되어 있고, 9절은 '그런데 너희가 차별하고 있으면 (율)법에 의해 범죄자들로 드러나지고 있음으로 죄를 행하고 있다' 정도가 되겠다. 8절은 '왕가' 혹은 '왕족'의 법이지만, 9절은 정관사가 붙어서 '그 법' 즉 '율법'을 의미하고, 10절 역시 마찬가지다. 차별하는 것은 정말이지 죄인으로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몸에 배인 우리의 실상이지만, 주님의 '왕가의 법'을 따르는 우리는 왕족이며 제사장들로서 이웃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해야 한다.
10-11절은 정관사가 붙은 '그 법' 즉 율법에 따라 모두 지켜도 그 중 하나만 범하면 범법자가 됨을 말하는데, 우리 믿는 이들은 더이상 '율법'을 따라 행하며 심판받지 않는다. 그래서 12절은 다시 정관사 없는 '법' 즉 '자유의 법'을 말하는데, 이는 8절 '왕족 법'과 동일한 법으로 우리는 왕족으로서 율법 위에 있는 자유하게 하는 법을 따라 살며, 후에 이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따라 말하며 행해야 한다. 계시록에는 두 종류의 책이 나오는데 (계 20:12), 하나는 신앙인들의 이름이 기록된 생명책으로서, 거기에는 행위는 기록되지 않고 단지 이름만이 기록된다. 그와는 반대로 믿지 않는 이들은 그들의 행위, 특히 악행을 따라 심판을 받는다 (계 20:13).
13절은 '긍휼'을 말하고 있는데, 차별에 대해 긍휼을 언급하는 이유는 긍휼을 받은 이들은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긍휼을 얻는 이들은 그 받은 긍휼에 따라 다른 이들도 부자건 가난하건 긍휼히 여긴다. 긍휼은 주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주님, 주님은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주의 영광을 더 보기 원하고 그 무게를 느끼며 저도 무게 있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살리는 법이 있음을 봅니다. 더욱 이 법을 적용하며 살 수 있도록, 우리가 받은 바 그 은혜와 긍휼을 더 누리게 하소서. 사랑 받은 만큼, 긍휼히 여김 받은 만큼 우리는 행할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