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영성 가운데도 악은 공존할 수 있기에 지체들을 죽이며 말을 조심해야 함 (골 3:1-11)
지난 1:4-5에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고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칭찬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는 그런 모습들과는 달라 보이는 여러 명령들을 하는데, 1절 '위의 것을 찾으라' 2절 '위의 것을 생각하라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5절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8절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9절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등이다. (10절 '새 사람을 입다'는 명령형이 아닌 동사구 이지만 엡 4:24에서 같은 단어로 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풍성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있음에도 악은 우리 가운데 존속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2절 '위의 것을 생각하라'에서 '생각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φρονέω로 단지 '생각'만이 아닌 우리의 기질 혹은 속마음을 뜻하는 말로, 사실 여기로 부터 모든 악한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람이 '육신이 된' 때 부터 (창 6:3) 그들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 이었다 (창 6:5). 이러한 φρονέω는 우리의 '지체들'과 연결되어 죄를 짓는데, 그래서 5절은 '땅 위의 여러분의 지체들을 죽이십시오'라고 권한다. 시제가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아오리스트이기 때문에 부드러운 명령형이 되는데, 이 '지체들'은 우리 몸의 각 부분이며, 약 3:5는 특히 '혀'를 언급하고 약 4:1은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라고도 기록했다. 그렇다면 우리 몸의 각 부분을 다 잘라 버리라는 의미일까? 그렇지는 않다. 롬 6:13은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죽다'와 '살다'의 의미이다.
롬 6:11은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명하는데, '여기라'는 말씀을 한다. 이것은 법적으로는 우리가 이미 죄에 대해 죽었지만 (롬 6:2), 현실에서 우리의 죄된 기질이 튀어나오고 옛 사람의 행실들이 공존하기 때문에 항상 우리가 죄에 대해 '죽은 자'로, 또한 동시에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개정역에는 5절에 '..죽이라 곧 음행과' 라고 '곧'이라는 말이 있어서 이 '지체들'이 '음란, 부정.. ' 등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되게 하지만, 원어에는 '곧'이라는 말이 없어서 6절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비해 8절은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또한 그 모든 것들 (곧) 분노 증오 악의 비방 더러운 말 (등)을 여러분의 입 밖으로부터 벗으십시오'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우리 '말'에 대해 권유하며 이어서 9절에는 '서로들 안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지 말라'고 명한다. 이것은 계속해서 9절 '옛 사람을 그의 행실들에 대해 함께 벗어 버림'과 10절 '새 사람을 입음'으로 이어진다.
놀라운 것은 10절 말씀인데, 원어로는 '(골 3:10) 그리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혹은 입음으로, 입었으니) (이 새 사람은)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른 지식 안으로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정도로 되어 있다. 우리가 입어야 하는 혹은 입고 있는 이 '새 사람'은 창조주의 형상을 따른 존재이다. 이러한 진리를 볼줄 알아야 하는데, 특히 이 '새 사람'은 '지식 안으로 새로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 롬 6:11의 '여기다'라는 말을 보면 원어로 λογίζομαι이며 '말씀 λόγος'가 그 어원이고 중간/수동태 이태 동사로 되어 있다. 우리는 현재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해 죽은 자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산 자로 여기며 또한 여겨져야 하는데, 바로 이 '지식 안으로 새로워짐'으로 가능하다. 이것은 우리가 하는 '말'과도 연결되어 있고, 결국 우리의 '지체들'과도 이어진다.
11절은 '거기 그 안에는 그리스계와 유대계, 할례와 무할례, 야만 스구디아계 종 자유인이 없고 다만 그리스도는 그 만유 (이십니다), 그리고 만유 안에 (계십니다)' 라고 말하는데, 바로 그 '새 사람' 안에는 사람에 대한 구별이나 차별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께서는 만유이시고 또한 그 모든 달라 보이는 이들 안에, 혹은 만유 안에 계심을 말씀한다. 우리가 입는 그 새 사람은 현재 지식 안으로 새로워 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는 그 근본이 그리스도시고 주님은 바로 '그 만유'시며 만유 안에 계신다.
주님, 우리는 성도들로 또 의인으로 위치가 바뀌었지만 우리 삶에는 아직도 여러 악한 기질들로 인해 특히 거짓을 말할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이 새 사람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이 새 사람을 입으며, 우리의 생각과 기질과 말이 오늘 그리스도로 덮혀지기 원합니다. 주님과 하나되어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