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공동체다! (골 3:12-17)

교회는 공동체임이 분명하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 내가 속한 '교회'가 과연 공동체인가 생각해보면 답이 그리 쉽지 않다. 신앙 공동체는 분명 교회지만, 단지 간판을 달아 놓은 건물과 그 안의 모임이라면 반드시 공동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공동체'라고 하면 교회 밖에서도 쓰이는 말이지만, '신앙 공동체' 혹은 '운명 공동체' 등이라고 말을 하면 꽤나 심각한 이슈가 된다.

12-13절은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도들 그리고 아가페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택한 (자들)로서 긍휼들의 창자들 친절 겸손 온유 장고 (등을) 옷 입으십시오. 서로들 참아지고 있으며 여러분들 중에 은혜가 끼쳐지고들 있게, 누가 누구에게 혹시 불평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은혜로 하셨던 것을 따라 또한 여러분도 (하십시오)' 라고 기록하는데, 이것은 교회의 궁극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이다. 문제는 교회가 항상 이렇지 않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들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회가 종교 집단으로 전락하고 공동체의 모습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한 명이 위의 것을 한다 해도 다른 이들이 함께 (서로들) 하지 않는다면 효과가 없다. 소위 '착한 놈들'만 죽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참 의미에 대해 성도들은 계속해서 들어야 하고 주입되어야 하며, 동시에 그 '공동체 생활'을 진정 실행해야 한다. 이것은 소위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에서는 매우 쉽지 않다. 모든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번에 상대하는 '주일예배'나 그 외 '예배'를 가지고는 이러한 신앙 공동체 생활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다!

이러한 공동체 생활은 '교회' 내에서도 '속회' 혹은 '다락방' 등의 모임을 통해 시도되고 있지만 많은 경우 매우 피상적인 모임으로 끝난다.  '교회' 내에서도 참된 공동체의 삶이 가능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많은 부분이 수정되어야 하며, 특히 '담임 목사'가 자신의 단독 리더십 이해를 버리고 분명한 공동체 의식을 품어야 한다. 각 '교회' 내에 많은 작은 모임들을 활성화하고 그 각자의 리더들에게 완전한 독립 혹은 자치 (좋은 면에서) 와 권위를 부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동역자를 데려오려 하지 말고 내부에서 미래의 일꾼들을 양육해야 한다.  신학교를 다니거나 졸업했다고 영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지난 2000년 내가 풀러에서 공부할 때 많은 한인 학생들이 있었고 그 중 다수가 한구에서 온 유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풀러는 물론이고 여러 한국 신학교, 더우기 한국에 있는 많은 신학교에 신입생들이 채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과거 신학교를 졸업하고 중형사이즈 이상의 교회에 부임하면 매우 좋은 대우를 받았기에 신학교가 인기 있었지만, 이제 현실적으로 그러한 대우를 기대하기 힘들어졌고 따라서 신입생들의 수가 극감할 수 밖에 없다.  사실 이러한 현실은 사회 경제적인 분석으로도 예상이 가능했던 것인데, 이러한 변화에 휘둘리기 쉬운 것이 바로 작금의 '교회'의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14절은 '그런데'로 시작해서 '모든 것들 위에 아가페를 (더하시오). 이는 온전함의 서로 묶음입니다' 라고 말한다. 아가페 즉 하나님의 참 사랑 없이는 이러한 공동체의 실행이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어떤 카리스마틱한 리더가 이끄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지만, '공동의' 어떠함을 추구하는 문제는 항상 쉽지 않은 것이고 실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온전함의 서로 묶음'이 없다면 소위 '교회'는 종교 집단으로 전락하며 그 모든 실행들은 종교 놀음 외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15절 역시 이러한 공동체를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그리고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마음들 안에 주장하게 하라 그 안으로 또한 여러분은 한 몸 안에 불러졌습니다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희(感喜)의 (사람들이) 되고 있으라'고 명한다. '하나님의 평강' '마음들 안에 주장' '한 몸 안에 부르심 받음' '감희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한, εὐχάριστος 단 한번 나오는 단어)' 라는 말들은 유기적인 공동체의 어떠함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제도적 질서'나 그 외 단체를 유지하게 하는 장치 등을 말하지 않고 모두 유기적인 내용 뿐이다.

16절 역시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풍성히 거하고 있게 하라. 모든 지혜 안에서 여러분 자신들을 가르치고 권면하며 시들과 찬미들과 영적인 노래들을 은혜 안에, 여러분 마음 안에서 주께 노래하고 (있으라)'고 말씀하는데, 교회 내의 어떤 '부서'들이나 '리더들'을 말하지 않고 우선 '그리스도의 그 말씀이 여러분 안에 풍성히 거해야 함'을 말하는데, 이것은 14절 '아가페'와 15절 '하나님의 평강'과 동일한 것이다. 특히 '모든 지혜 안에서 여러분 자신들을 가르치고 권면'할 것을 말하는데, 개정역에는 '서로'라는 말이 있지만 원어에는 단지 '너희 자신들'로 되어 있어서 '서로'의 의미도 있지만 우선은 '내 자신'이 나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권면할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면 따라오는 것이 바로 '시들과 찬미들과 영적인 노래들을 은혜 안에, 여러분 마음 안에서 주께 노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 없이는 이러한 시들과 찬미들과 영적인 노래들이 결코 나올 수 없다.

17절은 '그리고 말 안에 혹은 일 안에 여러분이 무엇을 하고 있든 모두 주 예수 이름 안에서 (하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과 아버지께 감사들하라'고 기록하는데, 이것이 공동체의 '경계 (바운드리)'이다. 신앙 공동체는 세상 '공동체'들과 확연한 차이가 있는데, '주 예수 이름' 이라는 경계 안에서 '그분을 통해 하나님과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이 목적이다. 신앙 공동체는 이러한 실행을 한다.

주님, 주님의 몸된 교회, 그 신앙 공동체를 세우소서. 우리가 알고 믿고 있는 종교적 모습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주께서 원래 뜻하셨던 참된 그 '한 몸'을 주의 충성된 성도들로 이루게 하소서.  현재 존재하는 많은 '교회'들이 종교 집단이 아니라, 진정 자신들과 주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주께 복종하는 주님의 몸 되게 하소서.